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81) / 바람이 지나고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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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81) / 바람이 지나고 남는 것
  • 정명재
  • 승인 2022.03.23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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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바람은 바람으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욕구(needs)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쉼 없이 그 단계를 넘나들며 지속되는 것이고 부족한 그 무엇이 생기면 인간의 욕구는 가동하는 것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다섯 욕구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 것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존중의 대상이 되길 바랄 것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탐구하고 고찰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내가 바라본 수험생들 다수는 존중의 욕구를 바라며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내적 동기(motivation)에 충만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인생의 단면을 경험할 수 있다. 누구나 처음에는 낯선 것이 인생수업이다. 나이가 들고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할 무렵이면 낯선 그 무엇인가는 늘 경계의 대상이고 때론 두려움이다. 공무원 시험을 이제 막 시작하던 초보 수험생들을 만났을 때에도, 산업안전지도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나를 찾았던 그들도 그랬다. 이제는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리고 눈가에는 세상의 연륜이 쌓인 주름에 편안함을 추구할 만도 했지만 그들은 안락보다는 시린 도전을 택했다. 낯익은 시간들과 공간들에서 멀어져보면 안다. 내가 있었던 그 곳을 한 발 뒤에서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란 서글픔이고 연민(憐憫)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른 아침이면 할 일이 있었고 그 과제 중에 하나가 시험공부였다. 하루를 마감하고 한 주(週)를 정리하면서 시험일을 향한 초조함과 불안 그리고 가끔씩 밀려오는 안도감을 안고 사는 스트레스에 익숙해야 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나면 밀려오는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주체할 수 없는 공허함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합격을 했건 아니면 불합격을 했건 수험생이라면 공감(共感)할 이야기이다.

시험을 앞두고 걱정 가득한 수험생이 나를 찾았다. 그에게 걱정은 인생 그 자체이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일처럼 누구나 겪는 부담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안고 갈 부모님이 계셨다. 몸이 안 좋아 늘 지병(持病)을 앓고 계시는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지극한 간호(看護)를 필요로 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위한 삶을 택해야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밥을 차리는 일과 설거지,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녀오는 일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는 가장(家長)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학교를 쉽게 다닌 적도, 값비싼 옷이나 신발 하나를 챙길 여유도 없이 이일 저일 마다하지 않고 했다. 최근까지는 병원에서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했고 늘 그렇듯 이제는 조금 더 쇠약해진 부모님을 돌보며 살았다. 그리고 코로나로 어머니께서는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누군가에게 공부는 하기 싫은 일이며 한 번 겪은 후에는 쳐다보기 싫은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누군가에게 공부란 희망이며 삶의 유일한 탈출구로써의 역할을 한다. 현실을 부정(否定)하는 것도 아니며, 현실에 반항하려는 것도 아닌 그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 안의 잠재력을 알고 싶을 뿐이다. 그는 여러 번의 시험 도전을 했다. 2016년 겨울, 그는 지금처럼 시험이 임박해 나를 찾았다. 남은 여유시간이란 게 시험을 앞둔 이틀이 전부였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부모님 돌보는 일과 돈을 버는 일을 병행하다 보니 시험에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48시간이 전부였다고 했다. 그렇게 밤샘을 함께 하며 공부를 했고 잠잘 시간을 빼서 온전히 책을 보는 시간에 쏟아 부었다. 7급 공무원 시험에서 아쉽게 두 문제 차이로 떨어진 것이 그때였다.

시험공부란 것이 지식의 축적이고 이를 암기하고 이해하면 끝난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곁들어야 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의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으며 공부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만 했다. 시험일이 다가오면 으레 그렇듯 빠듯한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듯 몰입하며 도전했다. 올해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의 나이도 어느 덧 30대의 후반을 지나고 있고 중환자실에 다녀온 이후 더 쇠약해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녹녹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시험일은 토요일 오전이었고 수요일 통화를 해 약속을 잡았다. 목요일 오후부터 금요일까지 잠시 짬을 낼 수 있다는 것과 공부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를 만나 지식의 양을 측정해 보니 올해도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에 걸릴 모양새였다. 강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공부량을 줄이는 작업이다. 수요일 새벽까지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니 새벽 5시에 이르렀다. 목요일, 그를 만나 늦은 저녁을 함께 했고 칠판 앞에 섰다.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늦은 밤까지 그와 함께 자료들을 설명하고 이튿날 새벽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잠 한숨 못자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어깨를 한참이나 쳐다보아야 했다.

그가 치르려는 자격증 1차 시험은 끝났다. 다행히 좋은 점수로 여유 있게 합격을 했다. 6년 전에 그를 처음 만났으니 참 오래도 되었다. 꽉 다문 입술에서 수줍은 합격 소식을 또박또박 전한다.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시간과 절망스러운 상황을 겪어 낸 보상을 받은 듯 기뻐했다. 그는 여전히 순수했고 여전히 희망에 배고파했다. 처음 만난 그때와 같이.
 

수험생들을 대하다 보면, 시험에서의 당락(當落)은 때론 많은 의미를 남긴다. 산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키가 크지 않다. 바람이 부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스스로를 낮출 줄 안다.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시험에서 불합격을 경험하기도 하며 스스로 겸손함을 배우는 건 실패에서 시작된다. 반면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누군가에게 합격이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빛이고 길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에게 있는 기회가 늘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에 공감(共感)하는 일은 경험만큼 좋은 게 없어 보인다. 시험에서 한 번 실패했다고 크게 낙심하지도 말 것이며, 한 번 성공했다 하여 크게 기뻐하지도 말아야 한다. 어쩌면 겸손한 가운데 기회가 올 것이고, 슬픔과 고통 가운데 희망을 놓지 않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게 공부에서 얻는 지혜가 아닐까? 차가운 바람에도 앙상한 매화나무는 눈부시도록 하얀 꽃들을 피워냈다. 신(神)은 그대가 흘린 땀 한 방울과 눈물 한 방울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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