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54)-헌법과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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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254)-헌법과 운동화
  • 강신업
  • 승인 2022.03.1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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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정치는 공동체의 이익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이요, 인간의 현실과 이상 사이를 조율하는 차원 높은 예술이다. 정치는 본디 공동체를 지키고 공동체 내의 갈등을 조정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본질적으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동생활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대립·분쟁이 조정되고 통일적인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공동생활의 틀 속에서 단순히 개개인의 도덕이나 자율적인 규범만으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는 바로 이때 국가권력이라는 강제력을 배경으로 법과 그 밖의 방법을 동원하여 질서를 유지한다.

정치가 이렇듯 숙명적으로 ‘갈등의 불’의 한복판에서 벌이는 인간 구조작업인 까닭에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비상한 태세를 요구받는다. 특히 공동체 내 최고 권력의 담지자는 그 권력에서 나오는 본질적 의무를 부담한다. 그 의무는 개인적이거나 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거나 강제적이다. 권력자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그것은 단순히 비도덕이나 무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반사회적이거나 위법이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최고 권력자가 생래적으로 지는 어려운 의무는 내부의 적들로부터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다. 즉 법치의 영역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국민통합은 인치로 달성되는 문제가 아니다. 최고 지도자가 정치에 성공하느냐 여부는 바로 이 법치의 구현 여부에 달려 있다. 국민통합의 달성 방법은 바로 한 치의 오차 없는 법치의 구현이다. 이 때문에 법치는 안보나 외교보다 훨씬 어려운 영역이다. 최고 지도자가 국민통합이니 화합이니 하는 말로 법치를 포기하거나 후퇴시키면 공동체의 질서유지라는 임무를 회피하는 꼴이 된다. 국민통합과 화합의 첩경은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호인욕(好人慾)이나 결단 부족에서 유래하는 인정론(人情論)에 휘말려 법의 엄정한 집행이라는 사회 계약을 포기할 때 그 자체로 국민통합은 요원해진다. 상자에 든 썩은 사과를 골라내지 않으면 상자에 든 사과가 전부 썩어버린다. 썩은 사과를 골라내야 한다는 당위는 그 사과가 다른 사과보다 큰 것이라는, 또 그 사과가 더 맛있는 사과라는 존재에 의해 달라지지 않는다.

칸트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사형수를 남김없이 처단해야 한다”라고 말했거니와 이 말이 전하는 포인트는 법치 구현은 그렇게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일 지구가 망하는 데 굳이 사형수를 처형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어차피 내일이 되면 지구상 모든 사람이 죽을 것이고 그 사형수 역시 내일이면 죽을 것인데 굳이 뭐 그렇게 요란스럽게 사형수를 처형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여기에 바로 핵심이 있다. 법치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법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권력자가 인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갖추고 법 집행에서의 이탈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최고 지도자의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또 하나는 현장성의 구현 여부다. 정치는 비린내 나는 삶의 현장에 관한 것이요, 굵은 땀과 흐르는 눈물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언제든 현장을 멀리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구중궁궐에 들어박히는 순간 그는 이미 정치를 포기한 것이다. 정치인의 역할은 그 권한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 않다. 정치인은 그 누구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그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율곡은 정치의 본령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 진단을 바탕으로 한 대안 제시 및 실천에서 찾았다. 정치의 장은 바로 현장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 역시 법치와 현장성의 준수와 유지에 있다. 나를 통제하는 위 사람이 없을 때 정치인은 내 맘대로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바로 이때 최고 지도자가 들여다봐야 할 것이 헌법이다. 나를 통제하는 사람이 없어 방종으로 흐를 때 운동화를 찾아 신고 달려가야 할 곳이 현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부디 앞으로 헌법과 운동화를 가까이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지름길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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