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계급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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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계급사회
  • 윤지영
  • 승인 2022.03.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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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윤지영</strong>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설 전날 밤 의뢰인 A한테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요새 마음이 자꾸만 약해집니다. 세상에 대한 좌절과 사람들에 대한 회복 불가능한 실망 때문에 점점 모든 것이 시시해집니다. 고슴도치처럼 살아봤자 제 인생의 점수가 정해진 기분입니다. 아마 사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문장들 때문에 마음이 아렸습니다. 장문의 고맙다는 인사, 명절이라 좋은 선물 보내고 싶은데 약소해서 미안하다는 덧말보다 이 문장들이 내내 가슴에 남았습니다. 왜 그럴까.

A는 대단히 용기 있고 지혜롭고 우아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기 위해 동생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동생 동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초지종을 확인했습니다. 엄두를 내기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냈고, 혼신을 다해 동생의 억울함을 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우아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감정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대응했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그녀가 사건의 직접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어디에도 문의할 곳 없던 그녀가 제게 본인이 당한 일의 조언을 구했을 때 저는 공감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좀더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랐더라면, 그녀도, 그녀의 동생도 이런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이 지혜롭고 우아하게 살아가려는 그녀의 노력을 허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비단 그녀뿐만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핸드폰 위탁 판매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급여를 제대로 받기는커녕 오히려 회사의 손해배상청구에 시달렸던 B는 법정에서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난하고 못 배워서 이렇게 대하는 건가. 살고 싶은데 왜 내버려 두지 않는지…”

B의 말이 맞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남들만큼의 환경에서 공부를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취약하고 악질적인 일자리만이 야무지고 성실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공감에서 불안정 노동, 취약 노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의뢰인들, 현장에서 만나는 활동가들, 이래저래 만나는 노동자들 절대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개천에서 태어나서 여전히 개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개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개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용감합니다. 우아합니다. 성실하고 지혜롭고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배경이 학력, 결혼, 배우자, 직업, 재산, 행복,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좌지우지한다지만 저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빛나는 존재인지 잘 압니다. 제가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 버티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로부터 위로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은 A를 보면서 저는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억척스럽게 생활했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은 제 어머니 말입니다. 저도 이들과 다르지 않은 배경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어쩌면 저는 개천의 용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위 명문 대학에 진학했고 번지르르한 자격증도 땄습니다. 얼마간 고소득자이기도 했습니다. 대학 친구들, 선후배들도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산이지요. 저는 어떻게 해도 개천의 용이 될 수 없습니다. 부동산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만히 있어도 자산만 가지고 있으면 돈방석에 앉는 세상에서, 더는 잘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없습니다.

저뿐만 아닙니다. 그 누구도 노동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대 언론사, 자본가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망할 것처럼 떠들지만, 한 달 200만 원의 월급으로는 집을 살 수가 없습니다. 월세를 내기도 팍팍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점점 더 가난해질 뿐입니다. 가난이 가난을 낳고, 돈이 돈을 낳는 사회에서 그 어떤 노력이나 능력도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 ‘솔로지옥’으로 얼굴을 알린 유튜버 ‘프리지아’가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소위 ‘짝퉁’을 가지고서 명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행세했고, 평당 1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에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금수저인 줄 알았는데 금수저가 아니었다는 것이 공분을 일으키는 사회. 반면 경영 능력은 엉망이지만 부모 재산으로 떵떵거리는 사람의 ‘멸공’ 주장이 다수의 공감을 받는 사회, 값비싼 음식·고급스런 호텔·부자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취미의 인스타그램 사진에 열광하는 사회,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인 비난과 야유를 받는 사회. 이런 사회 괜찮은 것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일상을, 현장을,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개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개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용감합니다. 우아합니다. 성실하고 지혜롭고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선한 의지가 사회를 바꿀 것을 믿습니다.

끝으로 채효정 씨의 산문집 「먼지의 말」에 적힌 글을 소개합니다.

“나쁜 짓을 안 하믄…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모은대?”

“이 말을 한 할머니에겐, 한 사람이 정직하게 일해서 모을 수 있는 재산 그 이상으로 가진 사람이란 필시 남한테 해선 안 될 나쁜 짓을 한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상상도 할 수 없이 큰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그 돈이 나온 곳에서 다른 어떤 사람은 울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노인이 평생을 살면서 깨친 이치였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2년 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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