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80) / 인연(因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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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80) / 인연(因緣)
  • 정명재
  • 승인 2022.03.1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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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세상을 살면서 많은 인연(因緣)을 만난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를 만나며,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기억도 간직한다. 반면, 만나지 말아야 할 인연도 때때로 스쳐간다. 바람이 나무를 스치듯, 인연은 시간의 실타래에 묶여 잠시 왔다 향기만을 남기고 사라진다.
 

수험생을 지도하고 그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했다. 어색한 만남에서 시작했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게 되고 그들의 꿈도 읽는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지식의 미로(迷路)를 조금은 수월하게 건널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얼굴들이 스쳐간다. 만남은 늘 그렇듯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었고 시간은 언제나 헤어짐의 순간으로 이끈다. 인생 인연을 멀리하지도 못할뿐더러 찾아오는 인연을 미리 알아 준비할 수도 없는 일이다. 헤어짐의 순간이면 늘 아쉬움과 후회로 남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나이 어린 앳된 수험생들을 주로 대했지만 작년부터는 나이 지긋한 수험생들을 많이 만났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지만 이제는 친구처럼 편하다. 공부에 뜻을 두는데 있어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으랴만 그래도 늦깎이 수험생이 되는 일에는 많은 우여곡절(迂餘曲折)이 있었을 것이다. 상황을 탓하면서 살아가기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은 나이였고, 삶이 아름답고 우아한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 오히려 공부의 매력에 빠질 시기였을 것 같다. 공부를 해 보면 안다. 장인(匠人)이 신념을 다 바쳐 물건을 만들 듯이 늦깎이 수험생은 마음을 깎아 시간을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어려서 하는 공부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것이고, 마지못해 해야 하는 숙제로 치부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하는 공부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나름의 삶의 철학도 묻어 있으며 오랫동안 쌓아온 습관과 경험도 공부에 담게 된다.

지난해에는 만80세인 1940년생 수험생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하였다.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공부시키느라 학업을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서울로 올라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말한다. 어릴 때, 학교에 그렇게 가고 싶어 밭일을 하면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던 기억을 회상하면, 지금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10년째 치매로 누워있는 남편을 돌보며 공부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만 공부를 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이다. 어느 날, 지하철 옆자리 동년배(同年輩)가 교과서를 보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결심을 하였고 꾸준히 공부하여 수능시험장에 이른 것이다.

하루가 짧고, 한 달이 유수(流水)같이 빠른 세상에서 중심 잡고 살기에도 힘들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 신명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배움에 늦음이 없듯 꿈을 꾸기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주위를 둘러보면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 우리가 흔히 ‘지금은 늦었어. 지금 해 봐야 불가능해.’라고 마음에 주문(呪文)을 거는 순간 우리 마음과 행동은 부정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래, 지금도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펼쳐져 있어. 길을 찾아보자.’라며 결심을 하는 순간 우리 앞에는 놀랍도록 많은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펼쳐진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가장 고단한 시간, 가장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면 누구나 마음을 내려놓게 마련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간의 날들을 돌아보게 되며 앞으로 남은 시간을 조용히 숙고(熟考)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의 아집(我執)과 편견(偏見)에 사로잡힐 수도 있지만 그것이 깨지고 무너지는 순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늘 배울 자세로 살아야 한다.

최근 만났던 수험생들에게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깨쳤다.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공부에 대한 겸손함은 그들의 이름을 빛나게 했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를 모두 알 순 없지만 현재 그들은 최고로 영롱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직장인,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라. 공부가 힘들다고 투정 부릴 대상을 찾지도 않는다.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던 그 옛날 젊은 엄마는 그들에게는 아련함이다. 그 나이에 공부는 왜 하냐고 투덜대는 식구들 앞에서 늦깎이 수험생은 순진한 웃음으로 가족들에게 화답한다. 좋은 아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 이제 철이 든 어른인데 그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은 모양이다.

70세에 시작해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분을 보았고, 63세에 공부를 시작해 김포에서 서울까지 체력을 보충해 가며 자전거로 통학해 시험에 합격한 분도 보았다. 나는 그들의 열의와 정성에 감탄하며 공부하는 이들을 경외의 눈빛으로 보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이를 세며 나의 한계를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 불가능의 영역을 만들고 부정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직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마음 하나 바꾸고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은 순간 기회는 다가올 것이고, 그토록 찾던 길도 그 모습을 차츰 드러낼 것이다.

일주일 뒤에는 달력에 표시해 둔 시험일이다. 조금은 긴장되고 초조한 심정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스스로를 믿는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살면서 배우고 익혔으며, 혹여 지금 이루지 못한다 해도 다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옳았음을 알아 버렸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였고 한 집안의 기둥으로서 살아온 그간의 세월을 잠시 잊은 채, 수험생으로 잠시 돌아왔기에 나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수험생에서 다시 생업(生業)에 종사하는 전문가로 살아갈 그들이기에 잠시의 만남은 귀하고 소중하다.
 

돌아서면 까먹고, 시간 지나면 걱정거리 많아 공부를 해도 머리에 남는 것이 적어 공부하기 참 어렵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하루 종일 공부해도 돌아서면 까먹는 나도 그런데 늦깎이 수험생들의 마음고생이 극심하단 걸 안다. 원래 시험공부란 게 그렇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복잡다단한 일상에서 지식을 익혀 머리에 오래 남게 하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시작을 한 이상 포기하지 말 것이며, 점수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마음 하나 붙들고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어야 한다. 그대들은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었으며 그 여정에 나를 끼워 줘서 참 행복했다는 말을 전한다.

정명재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 정명재 닷컴
2015년 지방직 일반행정직 9급 합격
2015년 국가직 방재안전직 7급 합격
2016년 서울정부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근무
2016년 서울시 방재안전직 7급 합격
2017년 국가직 교정직 9급 합격
2017년 지방직 도시계획직 9급 합격
2018년 지방직 수산직 9급 합격
2019년 지방직 건축직 9급 합격
2000년 국가직 조경직 9급 합격
‘직장인에서 공무원으로 갈아타기’ ‘공무원시험을 위한 코칭’ ‘장원급제 독학용 학습지’ 대표저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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