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이해하기 어려운 전쟁과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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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이해하기 어려운 전쟁과 푸틴
  • 신희섭
  • 승인 2022.03.0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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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현대에 와서 전쟁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탈냉전 이후 전쟁은 더더구나 수지 타산이 잘 맞지 않는 도박(gamble)처럼 보인다. 그런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여러 면에서 이해하기 어렵다. 전면적인 침공을 한 이유도, 자신 있게 침공한 것에 비해서 치러지는 러시아의 전쟁 수행능력도 그렇다. 며칠 내 점령할 것으로 예상한 키이우 정복이 어려워 보이자 푸틴은 핵 카드를 들고 나왔고 국제적으로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집속탄과 진공 폭탄을 사용해 민간 시설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번 전쟁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그런 관점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무엇이 푸틴을 움직였는가?”이다. 많은 분석가가 주장하듯이 푸틴은 히틀러의 귀환일 수도 있지만, 1930년대 메이지 일본의 재림일 가능성도 있다.

전쟁의 개시와 관련해서 푸틴은 합리적 예상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전면 침공을 선택했다. 기습의 이점이라고는 없는 상태에서 침공한 것이다. 게다가 전쟁의 ‘목적’ 또한 불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체를 지배한 뒤 러시아에 병합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베트남을 상대로 했듯이 혼만 내주고 끝낼 성격과 규모의 도발도 아니다. 게다가 푸틴 연설문에 우크라이나를 같은 민족구성원으로 규정한 이상 우크라이나는 절멸시킬 대상도 아니다.

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선 전략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전쟁의 생명줄인 ‘병참’은 딴 세상 이야기다. 전쟁이나 전투 경험이 없고 훈련도 부족한 러시아 군인들은 조국을 지키겠다고 악을 쓰며 달려드는 우크라이나 군인들 앞에서 항복하기 일쑤다.

전쟁은 왜 싸우는지에 대한 정치적 목적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개(Thymos)’를 가진 훈련된 용사들이 안정적인 병참을 받을 때 비로소 승리의 여신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서 정치적 목적, 전략, 용기와 훈련, 그 어떤 것도 러시아는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현대 국제사회는 정전론의 ‘정의’라는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목적상의 정의인 ‘Jus ad bellum’과 수단상의 정의인 ‘Jus in bello’가 대표적 기준이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은 목적상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고, 전쟁 수행과정 중 대량살상무기 사용은 수단상의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법이 우크라이나를 구원할 수 있나? 전쟁의 순간 법이 우크라이나를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의는 3가지 차원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 자국민의 지지와 동원을 끌어낼 수 있는지다. 외국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자진해서 조국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라. 둘째, 전쟁상대국 국민의 적개심을 줄여줄 수 있는지다. 러시아 시민들의 반전시위를 생각해보라. 셋째,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다. 러시아는 수많은 경제제재를 받지만, 우크라이나에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지원과 응원을 보라.

푸틴이 이런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푸틴은 왜 전면 침공을 선택했을까! 푸틴 자신이 아닌 이상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몇 가지 논리로 예상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히틀러 묘사에서 보듯이 푸틴의 ‘권력 욕구’로 설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푸틴이 자신의 ‘유라시아주의’라는 대전략에 속아 미시적인 그림을 잘못 챙겼을 가능성이다. 오인(misperception)과 오판(miscalculation)이 작동한 것이다. 세 번째는 ‘합리성’에 기초해서 순수한 전략과 계산에 따라 현시점의 도발을 통해 향후 푸틴과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오만과 우려의 콤플렉스가 동시에 작동했다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예측은 푸틴의 강력한 권력 의지다. 과거 제정러시아와 소련이 가지고 있던 안보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지정학적 사고와 낭만적 민족주의의 관념 체계와 폐쇄적인 권위주의 습성이 이 권력 의지를 뒷받침한다. 또한, 푸틴이 국내정치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내에서 절대적 권력은 국제정치적 제약이나 전략 따위는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푸틴의 ‘오만’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너무 쉽게 보게 만들었을 수 있다.

한편 ‘오만’의 뒷면에는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콤플렉스를 이론화하면서 열등감 콤플렉스와 우월감 콤플렉스를 쌍생아로 설명했다. 즉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심리 기제가 우월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틴의 오만과 과도한 자기 확신의 기저에는 현재 자신이 아니라면 러시아가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하지 못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우려나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국가 지도자로서 자신의 역사적 책무 혹은 도덕적 사명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규정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이런 극단적 선택이 오래 계획한 기획이라고 한다면, 이런 가능성도 한 번쯤 고려해볼 수 있다.

오만과 불안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국가가 단지 러시아만은 아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자꾸 중국을 떠올리는 이유기도 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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