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8-조부모의 미성년 손자녀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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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8-조부모의 미성년 손자녀 입양
  • 손호영
  • 승인 2022.02.1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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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한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마음먹고 신혼생활에 나아갑니다. 겨우 17세였던 그 여인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유부남이었던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혼 이듬해에 여인은 아이를 낳았고 여인의 부모님은 아이를 자신들의 아이로 키우기로 합니다. 여인에게는 아이의 ‘누나’처럼 행동하라고 합니다.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 그 사실을 알게 되는데, 꽤 성숙하게 반응합니다. “뭔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If anything, I felt grateful).” 디파티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샤이닝 등에서 명연기를 펼친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잭 니콜슨에게는 이런 가족사가 숨겨 있었습니다.

잭 니콜슨의 사례처럼, 어떤 사정으로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야 할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필요성으로 인하여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사건이 여럿 있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이에 대해서 명확히 판단하였는바,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대법원 2018스5 전원합의체 결정).

이 사건도, 잭 니콜슨의 가족사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친생모(1996년생)가 임신을 하고 약 18세 무렵 자녀를 낳았는데, 친생모는 자녀를 자신의 부모의 집에 두고 갑니다. 친생부와 친생모는 혼인신고한지 1년도 되지 않아 이혼하였고, 조부모는 외손자를 양육하면서, 자녀의 입양에 대한 허가를 청구합니다. 그들은 자녀가 친생부모와 교류가 없고 자신들을 부모로 알고 성장했으며, 가족이나 친척,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와 같이 대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친생부모는 그 입양에 동의하였습니다.

다수의견은 우선 법정 친자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입양의 요건을 살펴봅니다. 입양은, ‘출생에 의해 부모·자녀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에 정한 절차를 따라 원래는 부모·자녀가 아닌 사람 사이에 부모·자녀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성년자의 입양에 대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67조). 혹시나 있을 아동학대 등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가정법원은 ‘미성년자의 복리’를 위하여 그 양육 상황, 입양의 동기, 양부모의 양육능력, 그 밖의 사정을 고려하여 입양의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민법 제867조 제2항).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 의하면, 입양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니, 결국 가정법원이 미성년자의 입양 허가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양될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입니다.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는 데 장애물은 엄밀히는 사실 없습니다. 민법은 입양의 요건으로 동의와 허가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을 뿐이고 존속을 제외하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민법 제877조 참조). 전통이나 관습에 배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시대에 외손자를 입양한 사례가 있고, 비교법적으로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이러한 입양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조부모가 자녀를 입양하는 것은 허가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조손 관계였고, 조부모(양부모)가 자녀의 친생부 또는 친생모에 대하여 부모의 지위에 남아 있게 되므로(조부모와 양부모의 지위 중첩 문제), 이러한 사정이 자녀의 복리에 미칠 영향을 세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수의견의 이러한 판단의 배경은 가족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혼인율과 출생률 감소, 이혼과 재혼가정의 증가 등으로 가족 형태의 정형성이 감소하고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가족에 대한 관념과 가치관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도적으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당사자가 원하는 가족관계 구성을 국가기관이 허가하지 않을 때에는 이것이 ‘아동의 복리’라는 공익적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가정법원은 구체적인 사건에서 입양이 사건본인의 복리에 반한다고 볼 구체적인 사정이 있는지를 충분히 심리하여야 한다. 이러한 심리와 비교·형량의 과정 없이 전통적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친족관계를 변경시키는 것이 가족 내부에 혼란을 초래하거나 자녀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막연히 추단하여 입양을 불허한다면 입양허가에 관한 합목적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나 가족 구성에 관한 입양 청구인들의 판단과 선택권을 무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이 이를 잘 나타냅니다.

물론 반대의견과 그에 대한 보충의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성년 자녀의 복리는, 그 미성년 자녀를 기준으로 하여 자녀 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조부모의 입양을 넓게 허용하여야 한다는 의견은 ‘미혼부 또는 미혼모나 이혼 가정의 아이는 불행하므로 조부모가 친생부모를 대체하여 양육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조부모 기타 어른의 시각에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는 설시는 깊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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