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석우 차용석(碩愚 車鏞碩) 선생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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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석우 차용석(碩愚 車鏞碩) 선생을 기억하며
  • 최용성
  • 승인 2022.02.11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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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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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법학의 큰 별인 석우 차용석 선생은 1933년 1월 12일에 태어나 2018년 2월 23일에 돌아가셨다. 곧 다가오는 4주기를 맞아―사제지간의 인연을 넘어―선생이 한국 법학사에 남긴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살펴보기로 한다. 선생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면서도 학문적 열정을 잃지 않았다. 경북대에서 법학박사를 받고, 교수직에 있다가 1977년 7월부터 한양대학교로 옮겨 정년까지 재직하였다. 선생은 미국의 서던메소디스트대학교에서 비교법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범죄학을 공부하였었는데, 이때 미국 연방헌법의 인권보장 규정, 특히 법의 적정절차를 실정법에 표현한 헌법적 형사소송법, 헌법적 형법의 관점을 수용하였다.

선생은 당대 한국의 형사법 현실이 일본 군국주의에 뿌리를 둔 수구적‧전체주의적인 강압적 안녕질서, 가부장적 권위주의나 봉건적 가족주의 등에 사로잡혀, 인권 존중을 최우선 목표로 두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배치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선생의 형사법학은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이념으로 하는 헌법 정신에 따라 국가형벌권의 남용을 억제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길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실정법규의 규범적 의미에만 집착하고 사회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 문제를 어떻게 타당하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해결적 사고’ 내지 ‘기능적 사고’를 통한 형법의 사회적 기능과 형사정책적 목표 수행을 중심으로 형사법을 해석하였다.

선생은 박정희-전두환 독재를 거치는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를 폭력의 규범화‧법률화가 전개된 인권의 암흑시대이자 폭력적 탄압시대로 보았다. 전두환 정권이 지배하던 1984년에 선생은 「형법총론강의[Ⅰ]」 서문에서 “입법 과정, 법적용 과정 및 국민의 법의식 면에 있어서 전(前)근대적인 권력과 정실(情實)이 지배하여 법적용이나 집행에 있어서 자의성과 불명확성, 이 때문에 일어나는 법적 효력의 진공 층과 과잉규제 층의 양분 현상을 노정할 위험성이 있는 풍토”라고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하여 형법학은 “뚜렷한 사실적 실체를 전제한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 형벌권이 발동되도록 명확한 입법지침과 이론구축…계몽주의시대의 형법의 척골적 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오늘날에 와서도 그 실체 면과 절차 면이 강조되어 형벌법규의 ‘적정성’과 ‘명확성’의 원칙 및 절차상의 법의 적정의 원칙”으로 구현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형법의 비대화, 주관화, 윤리화, 국가주의화는 피해야만 할 낡은 가치였고, 형법은 사회통제의 최후수단으로 가능하면 개인의 자유 영역에 개입하여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반면 자본의 독점에서 오는 비행, 소비자착취행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행위, 대중의 정치참여에 대한 방해행위, 권력의 남용행위 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범죄화하여 형법의 법익보호기능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일찍부터 주장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기 전까지 형사소송법 학계와 실무의 주류는 실체진실주의 이념과 직권주의 소송구조론에 기초하고 있었다. 선생은 헌법적 형사소송에 기초하여 법의 적정절차 이념론과 당사자주의 소송구조론을 강력히 주장하여 한국 형사소송법학사에 중요한 논쟁의 장을 열었다. 법의 적정절차와 실체진실주의 사이의 관계를 두고, 선생은 “‘적정절차’의 이념은 헌법의 직접적인 요청이고 처벌 위주의 실체적 진실주의는 적정절차의 보장이라는 기본적 이념 아래서 추구되어야 할 소송법에 내재하는 하위목적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실체적 진실이란 객관적으로 소송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적정절차를 철저히 실현해가면서 발견되는 소송세계에서의 창조물이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주의는 이념적으로는 적정절차에 의하여 제약받으면서 후자의 범위 내에서 추구되어야 한다.”(차용석, 「형사소송법」, 1997, 63면)라고 명료하게 정리하였다. 한편 당시 형사소송법이 공판절차에서 검사 주도의 피고인신문 제도를 인정하고 있어 이것이 직권주의 소송구조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이던 현실에서, 선생은 형사소송법에 모순된 요소가 혼재하더라도 헌법이 지향하는 개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 법의 적정절차 이념, 기본권 존중 사상, 진술거부권 보장, 자백배제법칙 등이 명문화되어 피고인의 소송주체성, 당사자성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당사자주의가 헌법의 ‘간접적’ 요청이고, 그렇다면 형사소송법학은 선도적으로 당사자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해석론을 전개하되 직권주의 요소는 검사보다 열세인 피고인의 지위를 끌어올려 당사자대등주의를 보완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는 대담하고 창의적인 해석을 펼쳤다. 소수설이었던 선생의 주장은 어느 순간부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판례, 입법으로 실현되었다. 통설이나 판례도 언젠가는 다른 이론으로 극복하거나 변화할 수 있고, 이처럼 선생은 한국 형사법학사, 나아가 형사법 역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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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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