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96)-개헌을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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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96)-개헌을 논하라
  • 신종범
  • 승인 2022.02.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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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누림
신종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누림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새학년이 시작되어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학생들이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교실이나 화장실 등 담당 구역 청소를 해야했고, 화분에 물을 주는 등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당시 선생님은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나누어 할지 우리들이 토론해서 결정하라고 하셨다. “번호 홀, 짝 순으로 한 달씩 돌아가면서 하자”,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라는 의견 등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기마전을 해서 지는 팀이 전부 하자는 제안을 했다. 아이들이 동의했고, 선생님이 승낙했다. 나아가 이기는 팀에서 반장까지 맡기로 하면서 판(?)이 커졌다. 시합에서 이기면 반장을 맡고, 청소 등 궂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팀이 나누어졌고, 아이들은 이기면 반장을 할 사람을 정하여 각 팀 주장을 맡겼다. 그 후로 아이들은 자기팀 아이들하고만 어울렸고, 자기팀 주장을 잘 따랐다. 드디어 시합날. 선수로 뽑힌 아이들이 자기팀 주장을 손가마에 태우고 상대팀을 향해 격렬히 돌진했다. 시합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손가마를 태운 아이들이 밑에서 서로 발길질을 하는 등 반칙도 난무했다. 응원하던 아이들도 흥분하여 상대팀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선생님의 제지가 있긴 했지만, 격양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승부가 결정되었다. 우리팀의 승리였다. 그러나, 상대팀은 패배를 쉽사리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팀의 반칙 때문에 졌다며 재경기를 하자고 아우성쳤다. 선생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지못해 상대팀은 청소 등 궂은 일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팀에서 나온 반장은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반은 한동안 반으로 나누어져 서로 반목했다.

대통령선거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후보와 제1야당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접전을 이어가고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가 되면서 양 정치세력은 더욱 결집하여 사활을 건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국민들도 점차 양분되어 여당 지지자들은 제1야당후보를 ‘무당’후보라고 하고, 야당 지지자들은 여당후보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등 인신공격마저 난무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어렵게 만난 모임에서도 어쩌다 선거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상처만 남긴채 헤어진다. 결국, 한 달 후 누가 대통령으로 결정되더라도 전 국민적 축복 속에 임기를 시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많은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임기 내내 반대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다. 당선된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과 그를 반대한 국민들의 반목은 더욱 공고화 될 것이다.

요즘 대선 국면을 보고 있자면 여당후보와 제1야당후보를 각 정치세력들이 손가마를 태우고 앞서 이야기한 기마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당시 했던 기마전에서 이긴 팀만이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어 그토록 승부에 집착했듯 대선에서도 이긴 세력만이 막강한 권력을 얻을 수 있기에 각 정치세력들이 사활을 걸고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승자독식 구조의 승부는 후유증도 너무나 크다. 누가 이기든 패한 쪽에는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고, 서로 간의 반목은 상당기간 지속된다. 그리고 다음 승부에서 또 다시 사활을 건 싸움과 반목이 이어질 것이다.

대통령제도는 미국에서 연방 통합의 상징으로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예일대학 후안 호세 린츠 교수는 일찍이 “정치 상황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들어 극단적 분파주의를 조장한다”거나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국외자를 선출할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제도의 실패를 경고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한 결과 대통령선거가 정치세력 간 사활을 건 승부가 되면서 국민 통합이 아닌 국민 분열로 이어지고 있음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군부독재와 싸운 민주화운동의 성과물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뽑는 직선제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권력간 견제와 균형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 또한, 대통령의 중임을 금지함으로써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어렵게 하고, 대통령 업무 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의 기회마저 봉쇄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났다. 이제 권력구조개편을 포함하여 새로운 가치질서를 정립할 헌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당연히 현재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그 중심에 서야 할 것이다. 얼마전 이재명 후보는 당선 후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하고, 권력을 분산시킨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다른 후보들은 아직까지 개헌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표시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정치개혁과 미래를 이야기 한다고 하더라도 헌법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다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매우 뛰어난 운전자라도 35년이나 된 차를 가지고 자율주행에 나설 수는 없다. 책임있는 정치지도자라면 지금이라도 개헌 논의에 나서야 할 것이다.

신종범 변호사/법률사무소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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