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5-법의 적응성과 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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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5-법의 적응성과 안정성
  • 손호영
  • 승인 2022.01.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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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머리카락을 이것으로 감기만 해도 염색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성능을 가진 모다모다 샴푸는, 품절 대란이 있을 정도로 이슈였습니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모다모다 샴푸의 원료인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을 화장품 원료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상품 판매가 금지될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모다모다 샴푸는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가 주역으로 개발하였습니다. 그는 홍합이 해안가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는 이유가 접착 물질 때문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이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구를 하던 중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사고의 흐름은 이와 같았습니다. <① 홍합이 가진 접착력의 핵심은 폴리페놀 성분인데, 단백질에 잘 붙는다. ② 우리 몸 속의 피나 머리카락에도 단백질이 들어있다. ③ 폴리페놀이 피에 붙으면 지혈제가 되고(이해신 교수는 이미 지혈제를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에 붙으면 염색 샴푸가 된다..>

일반 대중이 듣기에는 솔깃한 이 개발은, 규제 당국이 볼 때는 난감한 과제였을 것입니다. 그가 개발한 ‘피가 안 나는 주사기’는 주사기인지, 지혈제인지 분류가 어려웠고, 모다모다 샴푸도 샴푸인지, 염색제인지 명확히 이야기할 수 없어 기존 관리 감독 시스템에 명확히 녹아들어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해신 교수는 이러한 규제의 경직성을 문제 삼으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예고한 규제도 새로운 혁신 제품에 대한 선입견 내지 색안경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THB가 피부감작성(후천적으로 피부가 민감해지는 증상) 물질로 평가되어 이와 같은 규제를 마련한다는 입장입니다.

스타트업 다자요는 농어촌의 빈집에 주목했습니다. 고치자니 돈 들어 부담되고, 고쳐도 임대가 될지도 모르고, 팔자니 아깝고 애매한 지방의 빈집을 활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재생 프로젝트는 제주도의 100년 된 빈집 두 채였고, 이후 투자를 더 받아 빈집을 더 고쳤습니다. 돌담 집이 번듯하니 새로 생기자, 골치 썩였던 빈집 문제가 이렇게 해결될 수 있다니 하며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문의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벤처사업 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민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선정되는 등 순항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갑작스럽게 모두 중단되었는데, 농어촌정비법상 민박업은 주인이 거주하는 집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빈집을 재생한다는 취지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당국은 거주 요건이 안전과 관련이 있고, 주거지역에 숙박업이 진출할 수 있으며, 외부로의 자본 유출이 우려된다는 등 문제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사회가 진전되어 가고 새롭게 나아가는 데에 기존의 질서와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빠르게 변화되어 가는 환경에 법이 신속히 녹아 들어간다면, 법적응성은 높아지겠지만, 법적안정성은 보장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다모다 샴푸와 다자요의 빈집 프로젝트는 법적응성과 법적안정성의 다툼이었다 생각이 듭니다.

어느 것이 더 앞선다고 예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모든 혁신은 그 유용성에서 오는 이익보다 그 혁신에 의하여 초래되는 혼란이 더 많다(Omnis innovatio plus novitate perturbat quam utilitate prodest)”는 법언(法諺)이 있는가 하면, “의학, 수학, 사회학, 심리학과 같은 대다수 학문의 목적은 앞을 내다보고 새로운 진리, 기능, 유용성에 다가서는 데 있다. 오직 법만이, 자신의 오랜 원칙과 선례에 끊임없이 집착하며, 구태의연을 덕으로, 혁신을 부덕으로 삼는다. 오직 법만이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고쳐 변화하는 세계의 필요에 부응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항하고 분개한다.”는 어떤 책의 문장도 있습니다.

새로운 혁신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과거의 경험도 한몫하기도 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P2E(Play To Earn) 게임은, 대체불가토큰(NFT)과 게임을 연결한다는 개념입니다. 현재 당국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하는 사행성을 조장하거나 환전(현금화)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를 규제하는 입장인데, 이는 2000년대 초반의 바다이야기 기억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바다이야기라는 게임기에서 성인용 경품용 상품권을 탄 뒤, 이를 근처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환가하는 시스템은, 전국에 바다이야기 열풍을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사행성이 짙었습니다. 당시 버스를 타고 거리를 돌아보면 바다이야기 류의 오락실이 쉬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사행성은 사람들을 중독시켜 사회적 폐해를 일으켰고, 확률 조작 등과 같은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곧 정부에서 나서 이를 규제했습니다.

이처럼, 법의 적응성이냐 안정성이냐는 안전, 다양한 이해관계, 사회적 유용성 등 여러 가치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함을 새삼 되짚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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