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4-실수의 뒷수습과 앞수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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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4-실수의 뒷수습과 앞수습
  • 손호영
  • 승인 2022.0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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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증권사 사업보고서에서 이스터 에그(Easter Egg)가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증권의 2019년 3분기 보고서와 2019년 사업보고서에는, 흰색으로 “나도 돈 많이 벌고 싶다.”, “공시업무 지겨워.”, “현대차증권 화이팅!!!”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흰색 바탕의 보고서이니 당연히 바로 보이지는 않고 마우스로 드래그하여야 해당 문구가 확인됩니다. 나중에 이를 인지한 현대차증권은 해당 내용을 부랴부랴 정정하는 한편 “부주의에 의한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습니다. 해당 직원에 대한 후속 조치는 별도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는데, 그의 실수 내지 장난이 일종의 유쾌한 해프닝 정도였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더존비즈온은 2021년 3분기 순이익을 10분의 1 규모로 잘못 공시하였습니다. 잠정 당기순이익이 108억 9,500만 원이었음에도 16억 2,500만 원으로 공시한 것입니다. 회사에서는 이를 곧 정정하였고, “자기주식처분이익의 경우 자기주식처분손익에 가감해야 하지만, 담당자가 회계처리를 누락해 해당 효과가 실적에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회계 담당자의 실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이익의 규모가 기대보다 크게 적다 여긴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하여 주가는 이미 18% 급락하였습니다. 해프닝이라기에는 실수가 가져온 결과가 커, 소액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사안입니다.

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실수가 없을 것을 전제하고 시스템을 정리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역사서 사기(史記)에는 한나라 명장 한신이 조나라의 현인 이좌거를 생포한 장면이 나옵니다.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할 때, 이좌거는 조나라를 위해 꾀를 내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으면서 한신이 승리한 것인데, 한신은 이좌거의 능력을 인정하며 손님으로 대접합니다. 한신은 승장으로서가 아니라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이좌거에게 앞으로의 계책을 묻습니다. 사양하던 이좌거가 거듭된 한신의 요청과 부탁에 이기지 못해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들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천 번의 생각에 한 번의 실수가 있고(知者千慮必有一失),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愚者千慮 必有一得). 제가 비록 어리석지만 저의 말 중에 하나는 얻으실 것이 있을 수 있으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이좌거는 겸양하며 스스로를 어리석다 하였지만, 위 고사에서 인상 깊은 것은 ‘지혜로운 사람도 실수한다.’는, 실수의 필연에 대한 통찰입니다. 따라서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실수가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것이라면 특별히 문제 삼지 않고 다른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압수수색영장에는 영장을 발부하는 법관이 서명날인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 영장에는 법관의 서명날인란에 서명만 있고 날인이 없었습니다. 경찰 수사관은 위 영장에 따라 압수수색에 착수하여 증거를 확보했는데, 그 증거를 과연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 영장에 법관의 서명만 있고 날인이 없으니 형사소송법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적법하게 발부되지 못하였고 이 사건 영장이 유효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증거를 유죄 인정에 못 쓸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 영장에는 야간집행을 허가하는 판사의 수기와 날인, 그 아래 서명날인란에 판사 서명, 영장 앞면과 별지 사이에 판사의 간인이 있으므로, 판사의 의사에 기초하여 진정하게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점은 외관상 분명하다. 당시 수사기관으로서는 영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었다고 신뢰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고, 의도적으로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거나 영장주의를 회피할 의도를 가지고 이 사건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이 사건 파일 출력물이 위와 같이 적법하지 않은 영장에 기초하여 수집되었다는 절차상의 결함이 있지만,...절차 조항 위반의 내용과 정도가 중대하지 않고 절차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권리나 법익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까지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높은 이 사건 파일 출력물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은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하여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는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대법원 2018도20504 판결).”

물론 그렇다고 대법원이 실수에 관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사안에 영향을 미칠 위험이 큰 경우는 실수에 단호히 대처합니다. “법원 경매시장에서 황당한 실수가 속출하고 있다. 입찰표에 ‘0’을 하나 더 적어 원하는 가격보다 열 배 높은 가격에 낙찰받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1억짜리 땅을 10억 원에 응찰하는 식이다.”(‘0’ 잘못 써 1억 6000짜리 아파트 16억 낙찰...황당 실수 최후<중앙일보 2021. 10. 24.자>) 위와 같은 기사가 반복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지만, 대법원은 위 실수를 그대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최고가매수신고인이 입찰표를 작성하면서 착오로 자신이 본래 기재하려고 한 입찰가액에 ‘0’을 하나 더 넣어 입찰표를 기재하였다는 사유는 매각허가에 대한 이의사유가 될 수 없다(대법원 2009마2006 결정)고 보고 있습니다.

실수가 발생했을 때 이를 뒷수습하는 것보다 실수가 발생되지 않게끔 하는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미리 앞수습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영장발부가 전자서명 형태였다면 서명 없이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입찰표를 전자제출하면서 음성으로 금액을 다시 확인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등등 여러 고민해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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