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능력주의와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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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능력주의와 공정
  • 최용성
  • 승인 2022.01.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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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최용성</strong> 변호사·법무법인 공유<br>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일반화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일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달러를 빌려주며 내건 여러 조건 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였다. 쉽게 해고하고, 정규직 수준의 보장이 필요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쓸 수 있게 하라는 요구였다. 고용이 유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이러한 조치는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자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외환위기는 극복하였지만, 그 후유증은 강고한 비정규직 체제로 남았다. 비정규직의 실상을 보면, 일시적 노동제공이 아니라 오랜 기간 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규직과 대비하여, 현저히 낮은 급여 외에도 여러 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받았다. 2020년 인천국제공항 보안담당 직원의 정규직 전환은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그런데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청년 중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공정’의 관점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특이하다고 한 까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값싸게 양질의 노동력을 지속해서 받고 싶어 하는 자본의 입장에서는 반대할 이유나 동기가 많지만, 아직 사회에 기득권을 갖지 않은 청년세대가 오랜 세월 누적된 불평등을 개선하는 정책을 나서서 반대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건의 불평등을 개선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청년세대에도 유리한 일이니 더욱 그렇다.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고 무한경쟁의 채용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불안한 현실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그 밑바탕에는 공정한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위키백과를 보면,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주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얻은 결과물(재산, 명예, 학벌 등등)을 챙기는 것을 장려하고 그 결과물을 정당한 것으로 옹호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경쟁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여기서 능력주의와 ‘공정’은 결합한다. 원래 공정은 공평하고 바른 것을 뜻하므로 평등이나 형평의 개념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능력주의와 연결된 공정은 경기장에서 지켜야 할 경쟁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는가, 반칙하는 사람을 제대로 배제하는가를 정하는 좁은 개념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는 공정한 규칙에 아래 능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기만 하면 그 결과로 초래되는 불평등은 개인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능력주의와 결합한 ‘공정’의 신화는 바람직할까?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능력주의가 사회의 공동선, 노동의 존엄,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폭군이라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불공정이 아니라 불평등에 있다고 진단한다(“능력주의는 폭군이다”, “공정의 덫에 걸린 한국 사회” 『한겨레』 칼럼).

능력주의는 결과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출발선의 불평등도 외면한다. 한국장학재단의 통계를 보면,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 중 부모의 월 소득액이 949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 출신은 2017년 41.4%에서 2020년 55.1%까지, 서울대는 2017년 43.4%에서 2020년 62.9%로 늘었다. 40개 의대 신입생의 52.4%, 25개 로스쿨 51.4%, SKY 대학 의대 신입생 중 74.1%, 로스쿨 58.3%가 고소득 가정 출신이다(『세계일보』 2021. 5. 19.자). 이 결과를 두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는 헌법 정신이 제대로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고 답한다면 당신이 믿는 능력주의는 불평등으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하는 능력에는 별 관심이 없는 편향된, 가진 자를 위한 능력주의일 것이다.

능력주의를 관철하려면 능력 평가가 수시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설계해야 공정하다. 특히 의사, 변호사같이 국가에서 독점적 자격을 부여하는 전문직이나 교육자, 공무원, 기업에 고용된 회사원은 그 능력을 수시로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1년 단위로 평가를 거쳐 일정한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의 자격을 박탈하는 대신 그 자리를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이 차지하는 경쟁사회야말로 공정한 능력주의가 최고로 구현된 체제 아니겠는가. 그러나 누구도 그런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시험으로 입사한 정규직 노동자나, 오랜 기간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 불평등한 처우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 자본에 고용된 같은 노동자일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적게 지급된 급여로 절감된 비용이 정규직으로 입사한 사람의 고액 연봉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누리는 과도한 이익이 내 능력으로 인한 당연한 보상이 아니라 누군가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의 결과로 얻어진 것일 수 있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능력주의를 벗어나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에 눈을 돌리고, 그것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일이야말로 모두가 공정하게 잠재된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세상에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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