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묘서동처(猫鼠同處)-조작과 은폐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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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묘서동처(猫鼠同處)-조작과 은폐의 기원
  • 송기춘
  • 승인 2021.12.3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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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말 어느 매체에서 올해의 세태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묘서동처를 선정하였다고 한다. 묘서동처(猫鼠同處)라는 말은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산다는 뜻이다. 구당서에 등장하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자연의 이치로야 쥐와 고양이가 먹이사슬 관계만은 아닐 것이니 상황과 조건에 따라 둘이 서로 잘 어울려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고양이를 키우는 목적에서 보면 쥐와 고양이가 같은 젖을 빨고 어울려 사는 꼴이란 기상천외한 일이 될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쥐는 간이 부었고 고양이는 타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법령에 의하여 부여되는 독점적 권한과 지위에서 비롯되는 권력은 부패의 위험이 있어서 어떻게든 통제되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기관에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 의사결정을 하도록 하고 기관의 운영이나 의사결정이 잘못되지 않도록 내부적 또는 외부적으로 통제하는 다양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또한 선거를 통하여 주기적으로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하여 국민에 의한 제어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는 때로는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묘서동처의 타락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군인의 사망사고를 조사하다 보면 군의 사인(死因) 조작이나 은폐 사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성폭력과 관련한 군인의 자해사망 사건에서도 사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시도를 보게 된다. 필자가 일하는 위원회에서 조사한 사건 가운데도 이러한 유형이 적지 않다. 일례로, A는 논산 제2훈련소(지금은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중 약 30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전신경련발작으로 후송되어 치료받던 중 불가역성 뇌간손상으로 인한 중추성 호흡마비로 사망하여 단순 변사처리되었다. 그러나 우리 위원회의 조사결과 A는 신병훈련 도중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막사 천막이 날아가면서 천막에 달린 목재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뇌손상을 입었고 이로 인하여 전신경련과 발작을 일으키게 된 것이었다. 신체 건장하다 하여 입대한 장정이 입대 후 불과 며칠 만에 아무런 이유가 없이 갑자기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기는 어려운 것이다. B는 트럭 손질 중 갑자기 사지 마비와 호흡장애로 쓰러져 후송하였으나 바로 사망하였다. 이 사건도 조사 결과 선임병이 주먹과 무릎으로 폭행하여 치명적인 심혈관계 허탈 등이 초래되어 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망 직후 제대로 조사했다면 선임병 폭행 사실이 드러나지 않기도 어렵다. 게다가 사망진단서도 다시 작성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게 각각 1964년과 1977년의 일이니 군은 4~50여년 동안 유족을 속이고 망인에게 예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조작과 은폐의 모습은 요새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러한 행태는 지금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군은 왜 사인을 제대로 밝히고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았을까? 우선은 사고 발생이 상급자나 지휘관에게 징계 등 불이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거나 알려지는 것도 군에는 명예롭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고, 이미 죽은 사람은 죽은 거니 산 사람이라도 살자는 모의와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지휘관으로서의 그릇된 권위 의식도 한몫 했을 것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 한없는 아량을 베풂으로써 자신의 힘을 한껏 드높일 수 있었겠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휘관이 사인 조사권한을 가진 자마저 지휘할 수 있었으니 권한 행사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 없다. 군사경찰(헌병)이나 군검찰과 군사법원까지 제각기 가져야 하는 직업윤리나 직무상 의무를 저버리고 직무를 독점하는 지위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 ‘퇴직하면 이걸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뭘 어쩌겠는가 말이다. 고양이는 이미 자신의 본분을 잊고 쥐가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게 되니 고양이와 쥐가 어울려 사는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현재는 군의 상황도 앞에 언급한 사건이 일어날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다. 군사경찰, 군검찰이나 군사법원의 조직과 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직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는 요원하다. 군 외부적 통제기구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와 별도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군인권보호관을 두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법률이 며칠 전 공포되었다. 여러 고양이들이 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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