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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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 김용욱
  • 승인 2021.12.1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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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김용욱 변호사, 인바스켓 대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 중인 장승수(서울대 1996학번 수석 합격)씨가 쓴 책의 제목이다. 1996년 베스트셀러였다. 오랜 기간 어려운 환경에서 전국 수석을 일군 소회는 충분히 귀담아 들을만하다. 특히나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공부에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공부가 정말 쉬울까? 변호사가 되면 때로는 밤을 새워 서면을 써야 하는 일도 많고, 의뢰인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건이 잘 들어오지 않게 되면 다음 달에 나가야할 직원 급여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변호사는 힘들게 헌‧민‧형과 씨름하던 시절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되면 말도 안 되는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기도 하고, 승진에 탈락했을 때는 심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변덕스런 상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마음고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공직적격성평가(PSAT) 문제로 씨름할 때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는 남녀 두 명이 야생에서 2주간 생존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두 남녀는 첫 대면부터 벌거벗은 채 만나지만 서로 부끄러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곧바로 그날 밤 야수를 피해 잠들 수 있는 자리를 종일 동안 만든다. 며칠 지나면 배고픔에 시달리며 울기도 하고, 그나마 악어, 물고기, 다람쥐라도 잡게 되면 뛸 듯이 기뻐한다. 신발없이 걷다가 개미에게 물려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불을 피우기도 한다. 그런데, 야생에서 발가벗고 2주 동안 불 피우고, 물고기 잡아먹고 하는 것이 시험 공부하는 것보다 힘들까?

일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보상 체계부터 다르다. 일할 때에는 매순간 피드백을 받고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는다. 수험 공부에 대한 결과는 한참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수년간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생존시그널에서 밤새 비가 내리는 와중에 잠을 청해야 하는 두 남녀도 2주가 지나면 출연료도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밤샘 공부를 한 수험생에게는 당장은 실질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딱 하나 ‘합격’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큰 비밀인 것처럼 천기누설을 하나 해보자면, 사실 수험생은 「온 우주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인 셈이다.

수험 생활이 힘든 것은 공부가 지겹고 힘들어서가 아니다.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도 아니다. 면벽수도하며 끝없이 외로움과 싸워야만 해서도 아니다. 수험생활이 힘든 것은 ‘불안정성’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와 단절되었다는 생각은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내 삶이 불안정하다는 것,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을 마음 편히 볼 수 없다는 것은 수험생활을 정말로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수형자는 지인들이 가끔 면회도 오고, 형기만 마치면 풀려난다는 정해진 일정이 있는데, 수험생에게는 이것이 100% 보장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수험생들은 내년에 있을 시험을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을 것이다. 첫 도전을 하는 이들은 ‘세상에나 공부할 것이 너무 많네’ 하며 고민일 것이고, 올해 2차, 3차 문턱까지 갔다가 떨어진 이들은 합격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묵묵히 견디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2022년에도 시험일은 다시 되돌아오고 합격자 발표일도 예정되어 있다. 이제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만 새기면 된다.

수험생활을 통과하는 과정은 참으로 느리고 고통스럽지만, 완주하고 난 뒤에는 순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는 밀러 행성에서 불과 3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데 이미 행성 밖에서는 23년이 지나버린 것처럼 말이다. 지금 수험 준비를 하며 잠시 짬을 내어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오늘 하루는 길어 보여도 합격한 후 되돌아볼 오늘은 기억도 안 나게 짧게 느껴질 것이다.

내년에는 코로나 19도 해결되고, 12월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음악이 더욱 경쾌하게 울려퍼졌으면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합격을 축하해 주어야 하니 말이다.

김용욱 변호사, 인바스켓 대표 / citizen@hanmail.net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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