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리투아니아의 ‘타이완’ 대표처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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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리투아니아의 ‘타이완’ 대표처 설치
  • 신희섭
  • 승인 2021.12.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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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타이완’과 ‘타이베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대만(臺灣)’이라고 부르기에 ‘타이완’이 익숙하지만, 국가 중 일부는 ‘타이베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공식명칭인 중화민국이 있는 섬이 타이완(Taiwan)이다. 그리고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 명칭이다. 그런데 중국의 눈치를 보는 국가들은 타이완이라는 용어를 피해, 타이베이(臺北, Taipei)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2003년 슬로바키아가 ‘타이베이 대표부’를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2021년 11월 18일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가 ‘타이완 대표처’를 수도인 빌뉴스에 설치하였다. 이로써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타이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자국(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면 적대국(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해야만 한다는 ‘홀스타인 원칙’을 가진 중국에 ‘타이완’이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대표부를 세우는 것은 도전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리투아니아의 대중국 ‘도전’은 꽤 눈에 띈다. 2019년 8월 중국 정부의 홍콩탄압에 대한 대규모 규탄시위가 그 시작이다. 2021년 5월 리투아니아는 중국과 중동부유럽국가 간 ‘17+1 정상회의’를 ‘유럽 분열’의 이유로 탈퇴했다. 게다가 9월에는 중국산 스마트폰이 개인 정보를 중국으로 반출한다는 이유로 ‘중국 스마트폰을 가져다 버려라’라고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2021년 11월 말에는 발트해 3국 의원들을 규합해 타이완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은 발끈했다. 공식 대변인을 통해 리투아니아 외교를 성토하는가 하면, 리투아니아와의 대사급 외교를 대리대사급으로 강등했다. 이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자 리투아니아행 화물열차 운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리투아니아 총리는 중국의 항의에 대해 조목조목이 반박했다. 게다가 가브리엘루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중국의 제재는 단기적인 효과를 가질 것이라면서, 자국 정책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은)너무 큰 권력과 경제력을 쥐고 있다. 중국은 정치적 요구가 있을 때마다 그 힘을 쓰고 모두가 거기에 동조한다. 이건 분명히 우리가 생각했던 세상이 아니다.”

‘전제적 권력(despotic power)’에 대한 거부. 이런 담대한 리투아니아의 행보는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인구가 270만 명뿐이고, 면적은 65,300㎢에 불과(남한 면적 100,413.㎢)하며, GDP는 621억 달러(전세계 77위)밖에 안 되는 국가가 세계 2위인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놀랍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의 중국 거부는 좀 더 깊이 보면 두 가지 요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역사’다. 1990년 소련에서 최초 독립한 국가로 리투아니아는 소련의 제재와 무력 침공을 받았다. ‘발트의 길’로 불리는 소련의 탄압 경험이 대만에 대한 공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러시아와의 오랜 갈등과 긴 식민지의 역사가 강력한 저항의식을 만들었을 수 있다.

둘째, ‘경제구조’다. 리투아니아 경제의 61%는 서비스 산업이고 제조업 비율은 20%대에 불과하다. 또한, 제조업 분야 중 레이저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와 의료 관련 레이저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경제구조는 중국의 경제제재 위협에서 리투아니아를 자유롭게 한다.

미시적 분석을 넘어 거시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리투아니아의 도전은 더욱 의미 있다. 리투아니아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중국의 인권침해, 정보의 비밀수집, 일대일로를 통한 경제 권력의 전횡이다. 그러나 이면의 핵심기준은 ‘민주주의’다. 비민주주의 중국보다 민주주의 타이완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들이 ‘생각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물질 만능적 자본주의의 떡고물보다는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려는 리투아니아의 태도는 2021년 11월 대선 이후 80년간 친구였던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 온두라스의 행보와 대조적이다.

리투아니아의 외교 노선은 2021년 12월 9일과 10일 사이에 있었던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의 맥락에서 고려해볼 수 있다. 112개국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뺐다. 대신 타이완을 초청했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민주주의’ 중심 외교를 그대로 보여준다. 권력정치(power politics)와 실용주의(pragmatism)에 기초해 중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소련을 견제하고자 했던 닉슨과 키신저외교와 궤를 달리해, 이념에 기초해 국제관계를 재편하겠다는 게 현재 미국의 입장이다. 이런 입장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보이콧했다.

리투아니아도 민주주의 외교의 깃발을 들었다. 작은 나라로 과거 독재에 희생당했던 경험을 살리는 리투아니아의 외교에 미국 상원도 지지를 보내고 있다. 유럽연합 내에서 몇몇 국가들도 이런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가 대만과의 외교를 강화한 것이다.

민주주의가 외교의 중심에 서는 현 상황은 한국에는 어려운 과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지만, 중국과의 교역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민이 깊을수록 민주주의 진영과 비민주주의 진영은 한국의 입장을 압박해올 것이다. 원칙과 실리 사이 어디에서 한국은 한국의 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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