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순댓국집’의 변화와 을지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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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순댓국집’의 변화와 을지로 풍경
  • 신희섭
  • 승인 2021.11.2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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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오랜만에 먹는 이야기를 한번 할까 한다. 순댓국에 관한 것이다. 엥? 웬 순댓국인가 할 것이다. 그렇다. 웬 순댓국 이야기다.

얼마 전 을지로 3가에 있는 순댓국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유튜브가 던져준 알고리즘 덕분인데, 순댓국집을 일부러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방문한 음식점에선 몇 가지 때문에 놀랐다. 첫째, 외관과 외부에서 먼저 놀랐다. 요즘 핫 플레이스라 그런지 대기자를 위한 키오스크가 있었다. 그리고 앱을 이용하면 예약도 가능했다. 한 마디로 ‘디지털화된 순대국밥’이랄까.

더 놀라운 것은 두 번째인 내부였다. 한옥식 서까래, 격자 모양의 한옥 창문 문살과 한지 그리고 자개장으로 꾸며놓은 실내장식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적당한 높이의 칸막이와 제법 떨어져 않은 테이블들은 한정식집까지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식당에 와있다는 느낌을 준다. 순댓국집에 어울리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고풍스러운’ 실내였다. 실내엔 가야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 “한 그릇의 순댓국에 인생을 담다.” 메뉴판에 쓰여 있는 문구다. 이 높은 자신감은 메뉴 구성에서도 나온다. 순댓국과 편백 찜기에 나오는 수육이 메뉴에 있다. 게다가 육회가 있고. 육사시미도 있다. 돼지 부속 고기를 파는 순댓국집에서 말이다!

메뉴판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먼저 오징어숯불구이가 메뉴에 있다. 이것은 꽤 좋은 전략이다. 돼지 냄새를 꺼리는 친구가 있어도 이 집을 고집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그리고 메뉴판 위에는 “1팀당 1병에 한하여 와인 콜키지 프리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기발하지 않나! 순댓국집과 와인.

그렇게 보니 내가 전에 알던 순댓국집과는 영 딴판이다. 우선 식당에서 돼지 잡내가 없다. ‘그냥 한 그릇 하고 가’라며 식당이 등을 떠밀어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식당 안의 손님 중에는 20, 30대 젊은 친구들이 많고, 특히 연인이 많았다. 연인과 함께 부담 없이 먹어도 되는 ‘음식점’이 된 것이다.

그게 뭔 대수인가? 예전 순댓국집을 떠올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돼지머리가 걸려있고, 소쿠리에 순대가 늘어져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켜켜이 밴 돼지 냄새와 낡아빠진 식탁이 반긴다. 푸짐한 부속 고기와 시원한 깍두기는 좋지만, 사실 마니아가 아니면 누구에게 추천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3가지에 주목할 수 있었다. 첫째, ‘지향점’이 있다는 점이다. 양 많고 저렴한 음식점에서 친구나 연인과 함께 와인을 가져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음식점으로 ‘인식’을 바꾸려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이런 아이디어가 2019년 5월에 개업한 이 음식점을 벌써 명소로 만들었다고 본다.

둘째, 새로운 시대 변화를 잘 읽고 있다는 점이다. 놋쇠 식기와 깔끔한 플레이팅은 인스타를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훌륭한 소재다. 그래서 젊은 층에 더 어필하는 듯하다.

셋째, 옛것의 아이디어도 잘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댓국은 먹을 것 부족하던 때에 돼지 부속을 푸짐하게 넣고, 피도 순대에 꾹꾹 눌러서 무엇 하나 버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음식이다. 잡내는 온갖 양념과 뜨거운 뚝배기로 막아가며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다. 이 부분도 합리적인 가격설정과 푸짐한 양으로 잘 살리고 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와 요즘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에 갔다. 전국에서 가장 ‘핫’한 노가리 집은 인산인해다. 하루에 맥주만 4.5t을 판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을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중 70% 이상은 젊은 세대로 보인다.

을지로가 번성했던 시기 조그만 공장의 노동자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던 곳들이 이제는 20대들의 인스타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그리고 노포가 많은 ‘힙(hip)’한 곳이 되었다. 반면 한 블록 건너 종로의 저녁은 어둡고 외롭다. 그만큼 젊은 세대의 발길이 많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종로와 을지로 간 전세 역전은 순댓국집이 보여주는 것 같은 작은 변화들 때문이다. 그 변화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이들의 구미를 당기고, 사진 셔터를 누르게 하며,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새롭지만 허투루 하지 않겠다는 ‘지향점’과 키오스크를 놓는 ‘시대 변화’에의 적응력과 ‘노포’의 매력들이 합쳐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을지로일지 종로일지. 그리고 10년 뒤에는?

대통령선거가 코 앞인 한국정치와 연결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정권교체와 정권연장만을 사명으로 하는 현재와 같은 대선정국이 몇 번 지나고 났을 때도 과연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현 정치세력을 계속 지지할까 싶다. 불분명한 ‘지향점’과 잘 읽어내지 못하는 ‘시대 변화’와 ‘그저 오래된 집’으로만 선거가 점철된다면, 한국정치는 외면받을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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