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7-진정한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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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7-진정한 가족관계
  • 손호영
  • 승인 2021.11.2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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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남편과 부인은 1985년 혼인신고를 마쳤습니다. 7년 뒤 남편이 무정자증 진단을 받자, 부인은 남편의 동의를 얻어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인공수정 방법으로 임신한 뒤 자녀를 출산합니다. 남편은 자녀의 출생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자신과 부인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마칩니다.

이후 남편과 부인은 부부갈등으로 2013년 법원에 협의이혼의사 확인신청서를 제출합니다. 자녀는 아버지와 혈연관계가 없다는 것을 몰랐는데, 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투는 과정에서 자신이 친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알게 됩니다.

남편(아버지)은 이제 자녀가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고, 혈연관계가 없다면서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합니다.

현행 민법에는 인공수정 자녀의 친자관계 성립에 관해서는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민법 제정 당시 인공수정 가능성을 상정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민법 제844조 제1항에서는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규정이 인공수정 자녀에게도 적용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친생추정 규정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친생추정 규정 그 자체가 진실한 혈연관계와 일치하지 않는 법률상 친자관계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봅니다. 즉, 민법은 친생추정 규정에 따라 형성된 부자 사이의 친자관계를 제거하고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하는데, 제소기간을 두고 있습니다(친생부인의 사유가 있음을 안 날~2년). 이 기간이 지나가면, 추정이 진실에 반한다 하더라도 번복되지 않습니다. 결국, 자녀의 법적 지위를 종국적으로 확정시키는 것입니다. 민법은 ‘혼인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규범적으로 친자관계라는 가족관계를 형성하고 그와 같이 형성된 가족관계에 강한 법적 보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친생추정 규정은 혼인 중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 출생과 동시에 안정된 법적 지위를 부여하여 법적 보호의 공백을 없애고자 한 것인데, 이는 혼인 중 인공수정으로 출생한 자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부정할 경우, 자칫 혼인 중 출생한 인공수정 자녀에게 아버지를 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은 친자관계의 성립과 유지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자녀의 복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지지됩니다.

그리고 인공수정 자녀에 대해서 친생부인이 허용되는지 여부를 검토해봅니다.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하였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하고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인공수정 동의와 관련된 현행법상 제도의 미비, 인공수정이 이루어지는 의료 현실, 민법 제852조에서 친생자임을 승인한 자의 친생부인을 제한하고 있는 취지 등에 비추어 이러한 동의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던 사정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친자관계가 부정된다거나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볼 것은 아니다.”

민법 제정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사회가 변화됨에 따라 발생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사안에 대하여 기존 법률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지는 법률가에게 맡겨진 책무입니다. 법률이 있어야만 이를 규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기존 법률의 생명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입법만능주의에 흐를 위험도 있어 경계해야 합니다.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법원에게 재판을 거부하지 않고 법, 관습법, 조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기존의 법률을 해석하면서 새로운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지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다음과 같이 내용을 덧붙입니다. “민법은 인공수정 자녀의 친생추정 규정 적용을 배제하는 명문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민법의 친생추정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를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하는 매우 포괄적인 형태로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 규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의 부자관계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문언해석에 부합한다.” 그리고 “민법 제정자가 친생추정 규정을 두면서 인공수정 자녀의 임신·출산을 예상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이러한 점만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는 “법률 문언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친생추정 규정이 자연임신과 같은 특정 규율대상을 명시하지 않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규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수정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판결은 상당한 화제가 되었고, 여러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가족관계’가 무엇인지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과 다름없는 논의라고 할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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