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분쟁의 교과서 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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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분쟁의 교과서 시리아 내전
  • 신희섭
  • 승인 2021.11.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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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시리아는 대한민국이 수교하지 않은 3개 국가 (2021년 기준 시리아, 쿠바, 코소보) 중 하나다. 여행 금지 국가기도 하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지금까지 10년째 내전 중인 국가다. 그리고 500만 명이 넘는 난민으로 유럽의 정치지형을 바꾼 나라다.

아마도 시리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아닐까! 사실 시리아는 북한과 관계가 깊은 사회주의국가에 독재국가다 보니 큰 관심이 없는 국가다. 그러나 내전의 관점에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 살펴보자.

시리아는 185,180.0㎢ 면적으로 남한의 1.8배 정도다. 인구는 내전 이전에는 2,500만 명에서 2,200만 명이라고 했는데, 2020년 기준으로는 1,7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집계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가 정확하지 않지만, 인구가 줄어든 것은 난민 때문이다. 2016년 기준으로 1인당 GDP는 1,300달러 정도고, 같은 해 기준으로 수출과 수입은 각각 17억 달러와 55억 달러로 추정된다. 내전 이전에도 가난했지만, 내전으로 더 가난해진 나라다.

인구의 74%가 수니파로, 이 인구에는 아랍인과 쿠르드족이 포함되어 있다. 다수가 수니파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 11월 하페즈 아사드의 쿠테타 이후 시아파 계열인 알라위파가 권력을 꽉 움켜쥐고 있다. 인구의 11%인 알라위파가 9% 인구의 기독교도들과 3% 인구의 드루즈 족과 연대하여 다수파인 수니파(쿠르드족을 포함)를 지배하고 있다.

종족과 종파 간 대립은 1차 대전 중 영국과 프랑스가 체결한 ‘사이크스-피코협정’에 따라 1차 대전 후 영토분할에서 프랑스가 현재 시리아 영토를 식민지 지배하면서 종족이나 종파를 무시하고 인위적인 국경선을 그은 결과다. 내전의 가장 핵심요소인 종족(ethnie)과 종파갈등이 이미 역사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해방 이후 시리아는 ‘국민국가 건설(nation-building)’에 실패했다. 영토는 이미 주어져 있고 주권도 돌려받았지만, 하나의 국민(nation)이라는 민족 정체성 구성은 실패한 것이다. 다른 중동 국가분쟁에서 나타나듯이 종족과 종파가 국민에 앞선 것이다.

시리아의 비극은 2011년 튀니지에서 시작하고 이집트와 리비아로 확대한 ‘민주화’가 그 뿌리다. 2011년 3월 시리아 남부 테라 시에서 낙서 하나가 발견됐다. ‘의사 다음은 네 차례다!’ 현재 대통령이자 하페즈 알사드의 아들인 바사르 알사드 대통령은 영국에서 안과 유학을 했었다. 아사드 정부가 싹을 자르겠다고 낙서한 아이들에 대한 고문을 자행하자, 이 사건은 결국 아사드 정권의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시리아 내전의 제1장인 ‘민주주의 vs. 독재’ 투쟁의 구성.

민주화는 한편 시아파에 대한 수니파의 저항으로 종파 분쟁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제2장이다.

시리아 반정부투쟁 지도부는 터키의 지원을 받아 이스탄불에서 ‘시리아 국민회의’를 발족했다. 시리아 북부에 자리잡은 터키는 시리아와의 악연을 이용해 지정학적 차원에서 개입한 것이다. 반면 시리아 내 거리의 시위는 점차 무장 투쟁화했다. 민주화 탄압과정에서 군부는 분열했고, 민주파를 지원하는 군부는 ‘자유시리아군’을 구성하였다. 문제는 반군이 단합하지 못하고, 다양한 독자적 조직들로 분열되었다는 것이다. 『중동은 왜 싸우는가?』에 따르면 2012년에는 1,000여 개의 민병대가 활동했는데, 2013년에는 4,000여 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의 10%를 차지한 쿠르드족은 독립국가구성의 기회를 보았다. 하지만 이들은 ‘민주동맹당(PYD)’과 ‘쿠르드국민회의’로 양분되었다. 특히 PYD는 터키 내 쿠르드 반군인 쿠르드노동자당(PKK)와 연계해 활동했다. 게다가 별도의 무장세력인 인민수비대(YPG)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의 저항에 시리아 정부군은 로자바 지역을 내주었다. 여기서 ‘쿠르드 족 vs 아랍 족’ 대립이 제3장이다.

그런데 이 로자바 지역은 유전지역이면서도 물자교류가 되는 한마디로 돈이 되는 지역이었다. 이 국면에서 IS(이슬람 국가)는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여 개입한다. 수니파 극단주의로 구성된 IS의 부상에 따른 ‘세속주의자 vs. 극단주의자’ 대립이 제4장을 구성했다. 게다가 터키 내 IS에서도 ‘IS vs. 알누스라 전선’이 분열한다.

그러나 이 정도 대립이라면 내전은 10년간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가난한 국가가 무슨 수로 10년 동안 무기를 동원해 싸운단 말인가! 여기서 시아파 이란이 등장한다. 또한, 중동 민주화를 우려하던 러시아도 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며 무대 중앙에 오른다. 미국의 대중동 영향력 저지를 목표로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터키는 처음에는 반군을 지원했지만, 미국이 터키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쿠르드족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자 미국을 버리고 아사드 편에 선다. 미국은 미국대로 38번이나 화학 가스를 사용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영향력 확대를 자국 안보 위협으로 파악한 이스라엘도 시리아 분쟁에 개입한다. 시리아 내전의 제5장은 이렇게 ‘내전의 국제화’로 클라이맥스가 된다.

시작은 민주화였지만, 지금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게다가 시리아인 스스로 끝낼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그래서 이 내전이 과연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

비극적인 시리아 내전은 여러 장의 모든 형식을 갖춘 내전의 ‘교과서’ 같다. 하지만 이 오랜 비극에도 교훈은 있다. 첫째, 국민국가는 그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험난하지만 중요한 과제다. 둘째, 민주화와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역사를 바꾸려면 결정적인 시점에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다. 셋째, 지원형태로 다가오는 외세의 개입은 결국 벗어나기 어려운 덫이 될 수 있다. 자기 결정권(self–rule)’을 이루겠다는 민주화가 운명의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아이러니가 여기서도 발생한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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