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6-법의 정도(程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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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6-법의 정도(程度)
  • 손호영
  • 승인 2021.11.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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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한나라 고조 유방이 진나라의 폭정에 항거하여 군사를 일으킨 뒤 수도 함양에 입성했을 때입니다. 진나라는 법가(法家)의 기치 아래 상당히 엄혹한 법 적용과 집행을 하고 있었고, 유방은 이를 잘 알았기에, 민심을 안정하고자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법은 세 가지만 정합니다. 사람을 죽인 자, 사람을 상해한 자, 도둑질을 한 자는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모든 법령은 폐지합니다.”

법삼장(法三章)은 고조선의 8조법과도 닮아 있습니다. 고조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법으로 알려진 8조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중 3개의 조항만이 전해집니다. “남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남을 때려 다치게 한 사람은 곡식으로 보상한다.”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은 그 물건의 주인집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만약 풀려나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

생명과 신체,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법의 근본 목적이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 법만으로도 사회가 규율되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깁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553건의 법률과 1,816건의 대통령령, 92건의 총리령, 1,298건의 부령, 356건의 국회규칙 등 5,115건의 법령이 존재하고, 125,413건의 자치법규가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3개의 법만으로, 8개의 법만으로 사회가 규율될 수 있었을지,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법은 어느 정도일지 고민되기도 합니다.

결국 법의 여백과 공백의 문제입니다. 법의 여백이 커 공백이 되면 정의가 세워지지 않고, 여백이 적어 공간이 없으면 자유가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는 고정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법을 세운 지 수백 년 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제갈량은 촉나라를 정비하면서 법삼장을 권유하는 동료의 의견을 일축합니다. “한 고조께서 너른 마음으로 법을 세 가지만 제시하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나라가 법을 씀에 있어 지나치게 가혹하고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법이 권위가 없고 무질서가 팽배하니 법의 위엄을 세우고 질서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리어 필요한 일입니다.” 사후에 제갈량이 “촉나라 안의 사람이 모두 그를 존경하고 아꼈으며 형법과 정치가 비록 엄격해도 원망하는 이가 없었다.”는 평을 들은 것을 보면, 그때는 법삼장이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법 제241조 제1항은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그간 네 번(1990, 1993, 2001, 2008)의 합헌 결정을 하여 왔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생활영역에는 법률이 직접 규율할 영역도 있지만 도덕율에 맡겨두어야 할 영역도 있다.”는 위헌의견은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드디어 위헌결정이 나옵니다. 우선 이제는 간통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 국민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 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임을 감안합니다. 전세계적으로 간통죄에 대하여, 덴마크는 1930년, 스웨덴은 1937년, 일본은 1947년, 독일은 1969년, 프랑스는 1975년, 스페인은 1978년, 스위스는 1990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오스트리아는 1996년에 폐지하였습니다.

또한 간통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살펴봅니다. ‘혼인과 가정의 유지’를 형법을 통해 타율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고,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함을 확인합니다. 또한 현재 간통으로 처벌되는 비율이 낮고, 간통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낮아져 간통죄의 행위규제규범으로서 기능이 유지되는지 의문이므로 형사정책상 일반예방 및 특별예방의 효과를 거두기 어려움을 지적합니다. 간통죄 이외에도 간통한 배우자를 상대로 한 재판상 이혼 청구,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상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므로, 간통죄를 규정한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 및 그에 동조한 상간자의 행위는 단순한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는 우리 사회의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대의견도 있었지만,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2016년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제241조는 삭제됩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의견은 법의 여백을 마련하자고 하였고, 반대의견은 법의 공백을 우려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법의 정도(程度)는 무엇인지 명확히 안다는 것은 어렵지만, 현재 사회 상황과 법의 규율 양태 등을 살피며 꾸준히 고민하고 논의해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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