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끝나지 않는 예멘 내전 : 권력 공유와 권력 집중의 중요성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끝나지 않는 예멘 내전 : 권력 공유와 권력 집중의 중요성
  • 신희섭
  • 승인 2021.11.05 1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오랜 내전으로 인구 2,600만 명 중 1,500만이 기아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예멘 이야기다.

예멘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국가다. 2018년 제주 난민사태나 통일사례 중 3대 통일사례(1990년 독일 통일사례, 1990년 예멘 통일사례, 1975년 베트남 통일사례) 정도로만 들어본 국가다. 이 나라가 시리아보다 인도적 재난이 심각한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예멘의 심란한 상황이 권력 공유(power share)와 권력 집중(concentration of power)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은 더더욱 모른다.

예멘(정식명칭은 예멘 공화국)은 아라비아반도의 남서부에 있다. 영토의 면적은 52만 8,000km²로 대한민국(100,210km²)보다 5배는 더 크다. 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있고 사막지대다. 홍해에는 과거 커피 무역의 대명사인 ‘모카’ 항이 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유명한 ‘아덴’항을 중심으로 과거에는 중개무역을 해서 국가 번성했었다. 현재도 수에즈운하를 나와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길목에 있는 국가다. 농업 국가이나 서쪽 지역만 강수량이 풍부하고 다른 지역은 물이 부족하다. 동부와 북부의 사막지대는 기온 차가 30도나 날 정도기 때문에 농업에 유리한 자연환경은 아니다. 또한, 원유와 가스를 매장하고 있는 국가다. 물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제외하면 예멘 인구 대다수가 기아 상태를 경험할 이유는 크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멘은 2015년 후티쿠테타 이후 지금까지 내전 중이다. 게다가 이 내전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세해 국제전이 되었다. ‘수학의 정석’ 뺨따구를 날리는 ‘내전의 정석’이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예멘의 역사에서 남예멘과 북예멘의 분리가 중요하다. 원래 부족 국가였던 예멘은 1500년대 오스만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1839년 영국이 중계무역을 위해 아덴 항구를 차지하면서 남예멘을 점령한다. 영국 때문에 예멘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터키가 패배하자 북예멘은 독립한다. 북예멘은 시아파인 자이드파가 다수다. 자이드파는 종교 지도자인 이맘을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지만, 이 체제에 불만을 가진 공화파들의 군사쿠데타로 왕정이 붕괴한다. 1962년 군사혁명정부 수립 후 8년간 내전이 뒤따른다.

남예멘은 2차 대전 이후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기초하여 독립했다. 1967년 독립한 예멘인민주의공화국은 아랍에서 흔치 않은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그래서 냉전기 소련의 지원을 받는다.

냉전 시대인 1972년 9월 남북 예멘은 전면전을 펼치기도 했다. 냉전이 끝나가던 1989년 11월 갑작스럽게 남과 북은 통일에 합의한다. 그리고 1990년 5월 실제 통일을 이룬다.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통일 예멘 정부의 대통령이 된다. 1994년 부족과 종파 간 권력 공유문제를 둘러싼 1차 내전이 발생한다. 그리고 무력을 통한 재통일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2011년 ‘아랍의 봄’이 예멘에도 왔다. 독재자 살레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살레 정부의 2인자인 하디가 권력을 인수한다. 그런데 다시 문제 발생. 인구의 56%를 차지한 수니파인 하디 대통령이 권력 공유에 실패한 것이다. 군부 내의 살레 파를 제거했고, 6개 주로 구성된 정치에서 인구의 43%를 차지하는 시아파에게 단지 1개만을 배분한 것이다. 권력 공유문제를 두고, 시아파와 수니파가 분열한 것이다. 그 결과가 2015년 시아파 후티족의 쿠데타다.

남(수니파)과 북(시아파)만의 전쟁이었으면, 지금까지 내전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무엇을 가지고 싸울 수 있겠는가!

시아파 보스인 이란이 시아파 후티족 지원에 나선 것이다.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고려가 개입된 것이다. 이란이 개입하자 사우디아라비아도 9국으로 구성된 수니파 연합을 구성해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사우디 vs. 이란’의 중동지역 패권경쟁이 예멘 내전에 합세하면서 사태는 복잡해졌다. 내전의 국제전화와 장기화가 된 것이다. 2019년 9월 사우디의 정유시설에 대해 후티 반군이 드론과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즉각 배후에서 이란이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례는 지역 패권의 대리전이 된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개입은 이 상황을 점입가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패권국가 미국은 중동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내전 연구자인 바바라 월터(Barbara Walter)가 지적한 대로 내전 해결에는 제3자의 중재가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이 손을 뗀 이 분쟁에 강대국 누가 개입하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예멘 정부군이나 후티 반군 누구도 국가를 장악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원자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이 내전을 끝낼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세계 패권 미국은 중국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예멘 문제를 누군가 주도해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내전이 국제전화된 상황에서 정부군이나 후티 반군 혼자 전쟁을 종결할 수도 없다. 향후 힘의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 것인지도 복잡하다. 몇 번 시도된 휴전협정에서 확인된 상호 불신까지 겹쳐 내전의 종결은 요원해 보인다. 점차 가난한 예멘인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예멘 내전의 안타까움을 잠시 뒤로 하면, 이 사태에서도 함의는 있다. ‘권력 공유’와 ‘권력 집중’이라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개념에 핵심이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 이후 시아파와 수니파 간 ‘권력 공유’를 제도적으로 이루었다면 예멘은 지금 원유를 캐고, 중개무역을 하고, 개간 사업으로 식량 생산량을 늘렸을 것이다. 합의주의(consensus model)를 사용하는 유럽 국가들처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의회에 인구 비율 정도의 대표를 선출하게 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통일 초기에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 통일에서 2015년 2차 내전까지 기간이 제도적인 권력분립과 배분 장치를 만들기에 아주 부족한 시간도 아니다.

반면 국가에 ‘권력 집중’도 필요하다. 권력이 집중되지 않으면 내부적인 도전을 받고, 외부세력의 개입을 용인하게 된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 권력이 왜 중요한지는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예멘은 매우 참담한 상황에서도 통일을 계획하는 한국에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