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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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관용
  • 최용성
  • 승인 2021.10.01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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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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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짓은 무지 또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이것은 원시인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의 어두운 습성이다. 잠시 원시사회로 시간여행을 해보자. 인간은 혼자서는 너무 약한 존재라 생존을 위하여 무리를 지어 살았다. 이때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여, 맹수의 먹잇감이 되거나, 식량이 부족할 때 먼저 죽어야 내 생존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큰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생존의 위협은 집단이 해체될 정도로 커진다. 이때 무지한 원시인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인과법칙을 몰랐던 원시인들은 설명되지 않는 자연재해를 ‘신의 분노’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스스로 만든 관념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신을 분노하게 하였다고 여겨지는 타자들을 혐오하거나 증오하면서 터부(taboo) 목록을 만들어 처벌하였다. 이처럼 “원시인은 현재의 노예일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노예였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두려움 속에 살다 공포 속에 죽은 비참하고 가엾은 존재”(헨드릭 빌렘 반 룬/ 이혜정 옮김, <관용>, 서해문집, 24쪽)였다.

원시인의 무지 또는 공포에서 비롯된 타자에 대한 혐오나 증오는 인류의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우선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이어지는 유일신 신앙의 역사가 대표적이다. 반 룬은 그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유대 땅에선 삶이 한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도시는…거의 10세기 동안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종교적 지위를 유지해 나갔는데, 상황이 이처럼 특수하지 않았더라면 유대인을 세상 다른 민족과 곧 갈라놓게 될 유일신 신앙은 절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에는 그런 우세한 도시가 없었다.…남다른 개인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인종이었으니만치 독자적인 사상이 발전할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40쪽).

구약성서에 대한 반 룬의 지적은 신랄하다. “엉터리로 간추린 한 민족의 역사에다 어정쩡한 연애시, 반쯤 정신 나간 예언자들의 뭔지 모를 환시(幻視), 그리고 그 어떤 이유로 아시아의 많은 부족 신 가운데 하나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읊어대는 토막글들을 담은 거룩한 책이 있다고 하면, 페리클레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아마 웃긴다고 했을 것이다.…그런데 3세기의 야만인은…이 비범한 문서를 인간이 이제껏 알았고 앞으로 알 수 있는 모든 것의 총합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고는 모세와 이사야가 그어놓은 한계선 너머를 연구함으로써 하늘에 도전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박해하는 일에 함께 나섰다.”(177∼178쪽). 바로 이러한 광신과 독선이 ‘불관용’의 역사로 이어져 근대 이전까지 “신의 이름으로” 살해되거나 억압을 받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불관용은 종교를 넘어서도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20세기에 들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극단적 불관용인 집단 학살을 체험하였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스탈린의 집단 숙청,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아랍인 학살, 캄보디아 학살, 르완다 학살, 스레브레니차 학살, 미얀마 학살 등등 실로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참담한 일이다.

역사를 통하여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불관용은 집단적 방어 본능의 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443쪽)이고, 모든 불관용의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던 무지한 원시인들은 아직도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살고 있다. 무지와 두려움은 지역-혈연-종교-인종-성-사상을 이유로 한 온갖 유형의 혐오 또는 증오, 차별과 배제로 발현되면서 난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무슬림 등등에 대한 불관용을 사회에 관철하려고 한다. 실로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은 사람들의 의식/무의식 세계를 끈질기게 지배하는 독소이다. 이것은 타자와 내가 다르되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깨달을 때 사라질 수 있다. 진정 관용은 건강한 열린 마음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제발 조심하자. 관용은 자유와 같다. 청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끊임없이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결코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아이 중에 생겨날지 모를 미래의 세르베투스들을 위하여,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하는 게 좋을 것이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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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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