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8-넛지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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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8-넛지의 한계
  • 손호영
  • 승인 2021.09.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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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공중 남자 화장실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소변을 보다 보면 조금씩 변기 밖으로 튀기 마련입니다. 냄새나 위생 측면에서 극복할 필요가 있기에, “한걸음 다가와 주세요.”라는 간청하는 표어를 세우기도 했지만, 별다른 소용은 없습니다. 1999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스키폴(Schiphol) 공항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냅니다.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놓아 보자. 남자들은 소변을 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량은 약 80% 정도 줄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에스컬레이터로 향합니다. 편안하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데 굳이 힘 뺄 필요 없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장기적 안목은 쉽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럴 때 에스컬레이터를 폐쇄하자는 선택은 불만만 만들 뿐이고 ‘계단을 오르면 OO칼로리가 줄어듭니다.’라는 표어는 공허할 뿐입니다. 이에 계단을 오르게 하도록 유인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사람을 끄는 데 재미만 한 것이 없습니다. 계단을 피아노 건반처럼 작동하게 세팅합니다. 한 계단 오를 때 ‘도’, 다음 계단 오를 때 ‘레’ 이런 식입니다. 그 결과 평소보다 66% 정도 사람이 계단을 더 이용했다고 합니다.

쓰레기통을 세워두어도 무심결에 쓰레기를 버리다 보면 쓰레기통을 빗겨서 넣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예 쓰레기통까지 가지 않고 거리에 쓰레기를 투기할 우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쓰레기통에 휴지 던져넣기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이면 고개를 끄덕일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쓰레기통 위에 농구 백보드를 붙여넣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농구경기하듯 즐겁게 쓰레기통 안으로 버리게 함으로써, 무단투기 쓰레기를 제법 줄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마냥 합리적이라면, 화장실 위생을 위해서 공중 화장실에서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지 않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을 것이고, 건강을 챙기고자 계단을 적극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이며, 거리의 청결을 위해 쓰레기통 안으로만 쓰레기를 넣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항상 이성적일 수 없고, 여러 요인으로 인하여 의사결정을 다르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사람의 특성을 파악하였고, 리처드 세일러는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는 듯 부드럽게 권유하는 것(nudge, 넛지)’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앞서 세 가지 사례는 모두 넛지에 해당하는 사례들입니다.

넛지라는 개념이 유행하면서, 그 맥락이 조금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앞서 사례들은 사람들에게 ‘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었다면, 어떤 넛지는 특정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을 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리처드 세일러는 넛지 개념을 소개한 장본인인데, 2015년 런던의 <더 타임즈>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그는 새로운 책을 썼는데, <더 타임즈>로부터 권위 있는 서평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메일의 링크를 눌렀더니 바로 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되었습니다. 첫 달은 1파운드만 내면 되지만, 한 달의 기간이 지났는데도 취소를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정기 구독자가 되는데, 금액은 26파운드라고 합니다.

유료화 자체는 수긍할 수 있었던 리처드 세일러는 정기 구독자는 될 생각은 없었고 자신의 책에 관한 서평만 관심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서평을 볼 생각을 접게 되었습니다. 약관을 찬찬히 읽다보니, 구독기간 만료 15일 전 신문사에 취소한다고 알려야 되고, 자신은 미국에 있는데 런던의 <더 타임즈> 사무실 근무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해야 되며, 그것도 자신의 비용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칫 기간을 놓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복잡한 취소절차를 거치기에는 너무 번잡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런 신문사의 방식은 자신이 제시한 좋은 ‘넛지’라고 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세 가지 원칙은 이렇습니다. ① 넛지는 모두 투명하여야 하고, 상대를 오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 ② 넛지를 원하지 않는 이는 쉽게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마우스 원클릭이면 가장 좋다). ③ 넛지로 유도된 행동은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 것이라는 데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리처드 세일러는 넛지를 ‘좋은 넛지’, ‘나쁜 넛지’로 구별했습니다. ‘옳은 넛지’, ‘옳지 않은 넛지’라고 구분하지 않은 것은, 넛지가 적법과 위법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도 합니다. 따라서 넛지의 구상과 활용, 평가는 법조인이 다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넛지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한다면, 이로써 넛지를 당하는 사람, 즉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리처드 세일러가 제시한 세 가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넛지를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해보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과연 <더 타임즈>가 제시한 약관의 효력은 어떠한지 법조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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