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임용, 법조경력 최소 ‘10년→5년’ 개정안 부결...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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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임용, 법조경력 최소 ‘10년→5년’ 개정안 부결...왜?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1.09.1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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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조직법 개정안 국회 의결, 재석 의원 과반수 못넘겨 부결...
이탄희 의원 “2년간 기름칠해 두는 후관예우 근절” 부결 이끌어
당장 내년 7년이상 경력자 선발...대법원 “희망자 없을 것” 우려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퍼블릭 마인드를 갖춘 사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아는 사람으로 바꿔 달라는 것이 법조일원화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이를 퇴행시키고 1심 판사 요건과 2심 판사 요건을 5년과 10년으로 쪼개서 판사승진제를 사실상 부활시키는 것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인력난을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법조 현실과 전체 사법 시스템에 장기적으로 최악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것입니다”

지난 달 31일 국회 본회의장. 판사 임용에 필요한 최소 법조경력기간을 현행 10년 이상에서 5년 이상으로 완화하고 고등법원 및 특허법원 판사는 법조경력이 10년 이상인 자를 보직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일부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반대 토론자의 나선 이탄희 의원이 한 말이다.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을 쌓아야만 판사로 임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조일원화 제도가 채 정착되기도 전에 이를 완화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지만 부결됐다.
 

10년 이상의 법조경력을 쌓아야만 판사로 임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조일원화 제도가 채 정착되기도 전에 이를 완화하는 법안이 지난달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 올랐지만 부결됐다. 이날 본회의 의결 결과 /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변호사, 검사 등 다양한 법조경험 등을 쌓은 10년 이상의 법조인으로 하여금 재판을 하게끔 하기 위해 2011년 도입된 법조일원화 제도는 원활한 인력수급과 완만한 제도적 안착을 위해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2년부터 ‘7년 이상’이라는 경과규정을 통해 점진적 시행을 해 왔지만 이를 완화하는 개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홍정민, 전주혜, 정청래, 소병철 의원이 각 발의한 법률안을 통합‧조정해 법제사법위원회의 대안으로 제안한 것이다.

이탄희 의원은 “현행법은 짧게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부터 또 길게는 1993년부터 18년간 논의해서 2011년에 도입한 제도”라며 “입법공청회 한 번 안 하고 법안 발의 후 단 3개월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렇게 퇴행시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무리수”라고 포문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판사 순혈주의 국가, 법원 관료주의 국가로 분류되고 법조일원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판사를 필기시험으로 뽑고 유일하게 판사를 대의기관 관여 없이 법원 자체적으로 뽑는 나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판사의 상(像) 또한 사법농단 판사들처럼 필기시험만 잘 보고 손 빠르고 법원장, 대법원장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설정돼 있다는 것.

이 의원은 “재판은 수학이 아니”라면서 “이를 바꾸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필기시험을 없애고 법원이 아니라 국회,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제 세력이 연합해서 판사를 뽑는 것이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고 했다.
 

ⓒ 이성진 기자

고육지책으로 2011년 국회 사법개혁특위 여야 합의를 통해 법조일원화를 시행했고 이에 따라 수많은 젊은 법조인들이 국가기관, 공공서비스 분야, 시민사회단체, 연구기관, 지역 변호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현장의 경험과 퍼블릭 마인드를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력자 중에는 판사 희망자가 없다’는 것이 대법원을 비롯한 개정 찬성측의 요지다. 하지만 5년차 변호사들의 비율만 해도 2017년 6%에서 2020년에는 83%로 14배가 뛰었는데 판사 희망자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특히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형 로펌 출신자들과 법원 내부 승진자들의 독식현상이 심해지고 전관예우, 후관예우가 더 심해져 새로운 판사 상을 가진 젊은 법조인들의 진입이 사실상 봉쇄된다는 인식이다.

이미 내년도 신규 임용 판사 157명 중에 상위 7개 로펌 출신이 무려 50명, 법원 로클럭 출신이 무려 67명이며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이 김앤장 출신이라는 분석이다.

이 의원은 “전국 신규 판사의 8분의 1을 하나의 로펌에서 충당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전 세계에 또 있겠느냐”며 “여기에 판사 임용경력을 5년으로 퇴보시킨다면 법원은 변호사 시험성적 좋은 사람들을 로클럭으로 입도선매하고 대형 로펌들은 3년 뒤 판사로 점지된 이 사람들을 모셔 가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이게 바로 후관예우”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벌써 로펌들에서는 ‘2년간 기름칠해 둔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개정안에 따르면 1심 판사를 5년 하고 나서 2심 판사로 승진심사를 받게 되고 5년 차 승진 판사, 6년 차 승진 판사 등 판사들이 서열화되고 승진 탈락하는 판사들은 옷을 벗고 전관 개업하면서 전관예우 논란은 더 심해진다”고 했다.

이 의원은 “불과 1년 전인 작년에 고등부장 승진제도가 폐지된 마당에 은근슬쩍 되돌릴 수 있는 일에 우리 국회가 협력해야 하느냐”면서 “개정안은 법원을 점점 더 기득권에 편향되게 만들 것이며 지난 6월 강제징용 손배 각하 판결처럼 탁상공론인 판결들이 늘어날 것이므로 최대 피해자는 재판받는 국민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법안 부결과 함께 다시 차분하게 공론화 절차를 거쳐서 논의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탄희 의원이 법조일원화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탄희 의원이 법조일원화를 완화하는 개정안을 반대하고 있다. / 국회의사중계시스템 캡처

이에 대해 홍정민 의원은 현행법대로라면 법관 부족으로 인한 재판 지연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며 법안통과의 당위론을 폈다.

지난 10년간 민사사건의 1‧2심 처리일수는 2010년 138.3일에서 2020년 171.9일로 30일 이상, 형사사건도 2010년 104.7일에서 161.3일로 무려 56일 이상 증가했다는 것이 홍 의원의 분석이다.

홍 의원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며 재판 지연은 물리적으로 판사가 담당할 수 있는 본안사건 수에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 법관 일인당 사건 수가 연간 589건으로 우리 사법 시스템이 비슷한 독일의 210건, 일본의 353건에 비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상황 속에서 지연된 재판을 해소하려다 보니 소위 5분재판, 3분재판이라고 불리는 졸속재판마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현행법을 유지할 경우 7년차 이상이 시작되는 2022년부터는 총 4년간 68명의 판사가 줄어들고 10년차 이상 임용이 시작되는 2026년부터는 총 128명의 판사가 4년 동안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양질의 재판을 받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강조한 뒤 “법관의 최소 경력 기준을 몇 년차로 해야 법조 일원화 취지에 맞는 다양한 경험을 갖춘 판사를 확보하고 법관 수급도 원활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해외 선진국에서도 오랫동안 고민한 사안”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로스쿨 3년과 법조경력 10년을 요구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40대 초반은 돼야 법관에 임용될 수가 있고 그 결과 30대 법관은 이미 찾아볼 수 없게 되는 등의 세대 다양성의 문제도 덧붙이며 개정안 통과를 피력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투표에서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재석 229인 중 찬성 111인, 반대 72인, 기권 46인으로서 부결됐다.

이번 개정안은 여야합의로 본회의에 상정한 안건이다. 그럼에도 부결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탄희 의원의 제도안착론이 더 강하게 각인됐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다.

아울러 7년 경력 임용을 불과 3개월 앞둔 상황이어서 동일한 형태의 개정안이 연내에 다시 상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한편, 대법원은 이탄희 의원이 주장한 내용의 일부를 반박이라도 하듯, 지난 6일 ‘현행 법조일원화 제도에서의 법관선발절차’라는 설명자료를 냈다.

대법원은 자료를 통해, 영국과 마찬가지로 필기시험은 합불의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 임용성적에 포함하지 않는 점, 법원 자체적으로 법관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위원이 절대다수 참여하는 법관심사위원회가 심의한다는 점, 대부분의 임용절차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특정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한 취득을 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법조경력을 10년 이상으로 높일 때 오히려 후관예우 위험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점, 5년 이상, 10년 이상 구분 운영한다고 해서 승진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 법관 임용의 ‘최소’ 법조경력의 ‘문턱’만 낮추고자 하는 것으로 법조일원화 제도 도입 취재를 무색케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여러 해에 걸쳐 논의와 연구, 토론회를 거쳤으므로 졸속 추진은 아니라는 점 등을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변호사단체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찬성을 해 온 반면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은 반대해 왔다. 또 법조일원화의 도입은 로스쿨 제도와도 무관치 않는 만큼, 법학계 전체가 주목하고 향후 재상정과 재의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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