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7-평균인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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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7-평균인의 정체
  • 손호영
  • 승인 2021.09.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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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1940년대 말 미국 공군은 뜻밖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비행기의 성능은 향상되었는데, 추락사고가 빈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루 사이에 17명의 파일럿이 추락을 경험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대책 마련이 시급했습니다. 초반에는 파일럿들을 탓했습니다. 비행기에서 결함은 발견되지 않고, 오작동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파일럿들은 억울하다며 항변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이와 같은 불상사가 자신들의 조종술 문제는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나섰습니다. 혹시 조종석 문제는 아닐까. 살펴보니 조종석은 1926년 설계되었는데, 당시 남성 파일럿 수백 명의 신체 치수를 표준화하여 마련된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조종석 시트의 규격·모양, 가속페달과 기어 사이의 배치 간격 등이 1926년 조종사 평균 신체 치수를 기준으로 유지되고 있으니, 체격이 커진 현재 파일럿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원인을 안 것 같으니, 4,000여 명 파일럿을 대상으로 평균 신체 치수를 구해서 조종석 설계를 다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손가락 길이, 지면에서 가랑이까지의 높이, 눈과 귀의 간격 등 구체적인 신체 치수의 평균을 산출하면 간단합니다.

길버트 S. 대니얼스 (Gilbert S. Daniels) 중위는 파일럿들의 신체 치수를 줄자로 재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산출된 평균에 해당되는 파일럿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파일럿 평균인’을 기준으로 조종석을 설계한다니, 그 조종석이 얼마나 많은 실제 파일럿들에게 효용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길버트 중위는 ‘파일럿 평균인’을 각 평균값과의 편차가 30%인 사람으로 꽤 넉넉히 상정하고 일일이 계산해봅니다. 대다수 파일럿이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파일럿 평균인’에 해당되는 실제 파일럿은 놀랍게도 0명이었습니다. 조종석 설계와 연관성이 상당하다고 본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10개의 모든 항목에서 평균치에 해당하는 실제 파일럿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길버트 중위는 결론을 내립니다. “평균적인 파일럿 같은 것은 없다. 파일럿 평균인에 맞는 조종석을 설계해봐야 어떤 파일럿에게도 맞지 않는다.”

공군은 길버트 중위의 결론을 숙고합니다. 중요한 발견이었기에 과감히 대응하기로 합니다. 공군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자동차의 운전석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현재 대부분 차량의 운전석은 앞뒤, 위아래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각 운전자가 자신의 신체에 맞추어 운전석을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공군은 ‘파일럿 평균인’이라는 개념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대신 ‘개인 맞춤형’을 새로운 설계 지침 원칙으로 세웠고, 이는 설계 철학에서의 큰 진전으로 평가받습니다.

1990년대, 한 언론사는 ‘평균 한국인’을 선정한 적이 있습니다. 신체조건, 교육조건, 소득조건 등 기본 통계의 중앙값에 따르면, 당시 평균 한국인은 ‘나이는 34~36세, 키는 167~171cm, 고졸 학력에 월 수익 1백50만~1백60만 원, 3~4인 가족에 전세를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기준에 맞추어 추적한 사람들을 후보군으로 삼고, 면접을 거쳐 평균 한국인을 상정해본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공군의 사례와 같이, 이러한 평균 한국인에 부합하는 한국인을 찾는 것은 오히려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평균이란 집단의 데이터를 요약하는 방법으로 용이하지만, 가상적 모형이라고 할 것이므로 실제와는 동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불법행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과실은 이른바 추상적 과실만이 문제되는 것이고 이러한 과실은 사회평균인으로서의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러나 여기서의 ‘사회평균인’이라고 하는 것은 추상적인 일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의 구체적인 사례에 있어서의 보통인을 말하는 것(대법원 2000다12532 판결)”이라고 하여, 평균인을 기준으로 불법행위의 과실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구 동물보호법(법률 제1465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1항 제1호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는 특정인이나 집단의 주관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20도1132 판결).”고 하며 법문의 해석에 있어서도 평균인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고, “음란성을 구체적으로 판단함에 있어서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전체적인 내용을 관찰하여 건전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대법원 2019도14056 판결).”고 하여, 음란성 평가에서도 평균인의 관점을 고려합니다.

이처럼 법원은 평균인을 일종의 전형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평균인이 어떠한 것인지는 명확히 알기 어려운 것은 여전합니다. 법원이 바라보는 평균인은 실재하는 평균인이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그를 따라야 할 당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규범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이를 확인하는 것은 법관의 역할인데, 구체적 사건에서 적용되는 평균인이 어떤 존재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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