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판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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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재판과 정치
  • 최용성
  • 승인 2021.09.0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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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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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해야 하지만, 어떤 판결을 놓고 정치적 입장에 따라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같은 판결을 두고, 한쪽에서는 편향된 법관이 잘못된 판결을 하였다면서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양심적인 법관이 바른 판결을 하였다면서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자고 한다. 판결을 선고한 법관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편 아니면 저편으로 취급되고 만다. 거대 양당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형국이어서인지 이런 일이 반복된다. 판결을 두고 칭찬할 수도, 비판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 입장이 앞서다 보면 평가가 왜곡되기 쉽다는 것이 문제이다. 중립적이고 올바르게 재판하였다고 믿는 법관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여 이런 질문도 던질 법하다. 법관도 사회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인데 과연 사회현실, 특히 정치로부터 독립하여 재판할 수 있는가? 법관은 진공상태에서 판단하는 존재는 아니다. 법관은 여러 사람과 교류하고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 포털사이트의 뉴스나 SNS를 통하여 다양한 정보를 얻음으로써 일정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변화시키거나 유지, 강화하는 심리적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심리적 과정에 왜곡된 정보 등이 개입하고 그로 인하여 형성된 가치관이 재판의 공정성을 그르칠 위험은 없을까. 어떤 법관이라도 합리적 논증에 기초하여 중립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고 있겠지만, 그것이 재판의 공정성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습성이 강한 존재이고 이 점에서 법관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최고 엘리트로서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다른 직역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중립적이고, 공정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는다는 확신, 법대로 바르게 판단하고 있다는 확신이 강할 때 과연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까, 아니면 나는 여론에 휘둘리기 쉽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정치적으로 특정한 성향이 있으니 그것이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고민할 때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까? 재판하는 법관도 법정 밖에서는 이 시대를 함께 사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인간적 약점을 갖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공정한 재판의 길이 열리지 않을까.

어떤 법관이 보수정당의 지지자이고, 유일신 종교를 가졌으며,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서울의 부유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고 할 때(정반대로 설정해도 마찬가지) 이 사람의 가치관과 환경이 재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평소 사회의 약자들을 접촉할 기회보다 엘리트 집단들과 주로 교류할 수밖에 없는 법조인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법관이 생각하는 공정이나 정치적 중립의 개념이 부지불식간에 편파적일 수도 있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는 사건에서 그때는 공정하다고 한 재판이 실은 강자의 편을 든 것이었고, 약자의 편을 든다고 한 재판이 실제로는 공정한 것이었다는 한 미국 연방대법관의 반성에는 큰 울림이 있다.

법관의 재판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법관의 재판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정치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점을 부인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모든 법관은 자신의 판단이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물론 법관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정치집단으로부터, 정당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지적은 언제나 타당하다. 다만 법관은 정치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판단이 법관 개인의 정치관에 따라 선취(先取)한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이성적 논증에 이르러야 한다. 법관 자신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살펴 이런 것들이 결정 과정에 정치적 편향으로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되새겨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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