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6-도둑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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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6-도둑의 스펙트럼
  • 손호영
  • 승인 2021.09.03 10:5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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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한나라 때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근무하던 진식은 학식이 깊을 뿐 아니라 성품이 온화하여 뭇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어느 날 늦은 밤 방에 들어가니, 천장 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슬쩍 보니 도둑이 들보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들과 손자를 불렀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거듭 노력하여야 한다.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당초부터 악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습관이 자칫 성격으로 변할 위험이 있고, 이로써 나쁜 일을 할 수 있다. 지금 들보 위의 군자(양상군자, 梁上君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부리나케 뛰어 내려와 그에게 사죄하였습니다. 이미 들킨 마당에 달리 더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느냐만, 진식은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며 도둑을 조용히 타이르면서 비단 두 필까지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이로써 태구현에는 한동안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합니다.

도둑을 군자라 점잖게 높이며 인격적으로 대한 진식의 응대는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며 고사(故事)로 남았습니다. 도둑을 주제로 한 성어(成語)는 양상군자 이외에도 여럿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분 도둑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을 열어 두면 도둑이 집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開門納賊).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방심하여 스스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도둑이 들어오고 나간 뒤에야 비로소 문을 잠그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賊出關門). 일의 결과가 나오고 나서 뒤늦게 수습하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도둑이 집안에 들어오자 그를 경계하는 주인에게 도둑이 되려 매를 들고 큰 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賊反荷杖). 서로가 마땅한 입장이 있을진대, 거꾸로 행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도둑이라고 반드시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수호전>은 송나라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양산박을 거점으로 하는 도적과 이들의 활약을 꾸며낸 소설입니다. 수호전의 주인공은 송강인데, 그는 말단 벼슬자리에 있던 인물로 죄를 얻어 귀양에 갈지언정 양산박에 들어가길 거부한 사람입니다. 신세가 자못 처량하여 감정이 솟구쳐 적은 시로 인해 역적으로 몰리고 목숨이 지척에 달렸을 때 양산박의 도움을 얻게 된 뒤에야, 그는 비로소 도적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양산박의 2대 두령이 되는 송강의 별호는 급시우(及時雨)로, 때 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소설은 도적 송강의 어짊을 강조하였고, 양산박 도적들을 호걸로 대우합니다.

조선시대 <홍길동전>의 홍길동은 의적 행세를 하는 것을 넘어, 사회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한을 내뱉는 서얼 홍길동의 모습은, 도적이 집적된 사회 문제 때문에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장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대 유명한 도적이었던 도척(盜跖)과 공자가 만났을 때를 상정하여 도척이 공자에게 일갈하는 장면을 넣습니다. 공자는 도척의 재주가 뛰어남을 알고 있기에 그를 바른길로 유도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만나러 갑니다. 어렵게 만난 그에게 공자는 도척의 세 가지 미덕을 높입니다. 도척은 용모가 아름답고, 지식과 능력이 광활하며,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적 일은 더는 하지 말고, 자신과 함께하여 사방에 큰 성곽을 만들고, 성읍을 건립한 뒤, 제후로서 존경받으며 난세를 일신(一新)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도척은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공자를 부정합니다. 공자가 추구하는 도(道)는 너무 높아서 성인(聖人)조차 그 미덕을 온전히 보유하기란 너무나 힘든데, 인간의 일을 교묘하게 꾸며 다른 사람을 미혹하려 하는 것은 결국 공자 자신의 재산과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야말로 더 큰 도적질이 아니냐, 공자가 추구하는 도는 인간의 본성에서 멀어진 채 급히 달려가는 모습이니, 남을 속이는 거짓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쏟아낸 것입니다.

도둑에 대한 인상은 이처럼 여러 층위를 가집니다. 집안의 불행을 상징하는가 하면, 선한 행실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개과천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며, 비록 도둑질을 하지만 의로운 일을 행하는 의적이기도 하고, 사회 문제를 지적하며 부조리에 항거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만약 진식의 집에 들어왔던 양상군자, 홍길동 또는 도척이 현대 법정에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봅니다. 증인으로는 진식, 홍길동의 아버지나 형, 공자 등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떠한 변론이 이루어질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쟁점들이 도출될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듯도 싶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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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maca 2021-09-04 05:25:27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

@유교는 이번생, 저번생같은 윤회가 없습니다. 유교나 가톨릭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가장 중요할뿐, 사람이 동물로 윤회하거나 하는것을 인정치 않습니다. 전생이나 내세도 없습니다. 다만 유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하늘로 승천하고, 현세에서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게 처우됩니다. 그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당개념이겠지요.한번뿐인 고귀한 인생, 부처 Monkey의 불교처럼 동물로 인간을 비하하지 말고 열심히 사는게 유교입니다.

macmaca 2021-09-04 05:21:34
재판관의 경우,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인정해 줄 어떤 명분들은 상당수의 경우, 아주 많이 발생할 수 있겠습니다.그래서 정상참작의 여지를 반영할 수는 있지만,실정법상 죄를 지었으면, 그 죄에 대해서는 징벌을 가할수밖에 없는게,법치주의 사회입니다. 정상적인 사회체제가 아닐경우, 인정해줄 수 없는 그 어떤 명분을 더 중요시하여,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이 그 부분을 비호하고 무력으로, 재판관을 제압할 수 있다면, 이런경우는 국가의 경우 쿠데타나 혁명성격의 특수한 명분에 해당될 것입니다.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macmaca 2021-09-04 01:22:03
인간은 선과 악이 공존하기에, 악을 교도하려고 유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잘못을 뉘우치면 다행인데, 오히려 대들며 덤비면 제도권의 공권력이 징벌해야 합니다. 그리고 국교인 유교전통이나 법.제도로 교화시킬수 없으면, 징벌절차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천년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가톨릭, 법과 제도등이 부정당하게 됩니다. 또한 유교.가톨릭경전이나 세계사, 동양사.한국사등 정사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야사.괴담.루머등으로 인간을 재단하면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도적은 정사에서 인정해 줄 수 없는 도적으로 끝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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