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5-직업적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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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5-직업적 습관
  • 손호영
  • 승인 2021.08.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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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처음 만난 이가 눈을 또렷이 집중해서 바라본다면, 부담스럽다며 대뜸 밀어내기 전에 그의 경력을 한번 묻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합니다. “혹시 대통령 경호관이셨나요?” 실제로 대통령 경호관은 작전 수행 중 돌발상황에 치밀하게 대비하려 하기 때문에 상대방 눈을 똑바로 보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신경이 곤두선 채 거동수상자를 파악하고자 하는데, 그의 의도를 눈빛으로 알아채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구두닦이 일을 오랫동안 해온 이는 상대방의 구두를 보면서 건강상태를 짐작하기도 합니다. 그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얼룩덜룩한 구두를 신는 사람은 당뇨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소변을 누면 약간이나마 구두에 튀어 묻는데, 당분(糖分)이 많기에 먼지가 잘 달라붙기 때문입니다. 굽이 닳지 않고 보푸라기가 생기는 구두를 신는 사람은 심장이 좋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구두를 끌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굽이 한쪽만 잘 닳는 것은 정상이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팔자(八字) 걸음을 하기 때문입니다.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알려진 호텔 콘래드 서울 객실팀 권문현 지배인은 나름의 업무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건네는 도어맨(doorman)의 첫 번째 팁은 차 번호 외우기입니다. 개성 강한 고객의 왕래에 미리 준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차량번호까지 외는 도어맨에게 고객이 고마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팁은 고객이 택시를 타면 차 번호를 반드시 적는 것입니다. 소지품을 분실할 우려가 있으니 호텔 측에서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세 번째 팁은 웃는 얼굴로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고객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호텔 측에 항의하면서 소란을 일으키더라도, 그는 웃는 얼굴로 고객에게 다가간 뒤,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라며 누그러뜨리고, “무슨 사업 하십니까?”라고 물으며 주의를 환기합니다. 그가 보기에 고객의 심리는 ‘자신이 누군지 좀 알아달라는 것’이므로, 고객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곧 자기 속내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하고,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원만한 해결을 주도하는 그의 노하우는 생활 속에서 저도 모르게 발현되기도 합니다. 동서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손님과 시비가 일어났을 때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 고객에게 가서, “죄송합니다.”하고 연신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싸움을 말리고, 일단 사과하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그의 직업적 습관이 일상으로 연장된 셈입니다.

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정보를 듣기 위해 분주합니다. 어느 날 기자는 중요 취재원 집으로 찾아갔는데, 자리를 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다리자는 마음으로 그늘에서 책을 담담히 읽으며 한참 있었는데 날이 저물었습니다. 결국 만나지 못해 발길을 돌렸는데, 다음 날 취재원으로부터 책 읽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먼저 연락이 옵니다. 기자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노하우는 이처럼 마음의 빚을 늘리는 방식일지 모릅니다.

기자의 진검승부는 사실 다음 단계입니다. 취재원을 만났을 때 그로부터 정보를 취득하는 방법이 취재의 성공 여부를 좌우합니다. 핵심은 ‘질문’입니다. 거듭해서 묻고, 답변이 충분하지 않으면 질문의 범위를 줄이며 해명하게끔 하는 것, 올바른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기자의 역할입니다. 문제는 기자의 이런 계속된 질문 습관이 일상생활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꼬치꼬치 캐묻는다며 타박을 들었다는 기자의 반성이 연잇는 것은, 그의 촘촘한 직업적 습관이 부드러운 일상에 반드시 맞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직업적 습관 이야기에 법조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느 검사는 아내에게 아이 학원 문제로 이야기를 하다 의아함을 느껴 물었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한 이야기와 다른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렇게 말이 달라지면 곤란하다든지,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든지... 질문의 모습을 한 추궁의 끝은 아내의 꾸지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변호사는 일단 공감부터 하고 본다고 합니다. 그러셨군요, 기분이 좋지 않으셨겠어요... 어느 판사는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어 초등학생 딸로부터 ‘판사처럼 말한다’며 지적받았다고 합니다. 어떤 말을 들으면 옳다 그르다 평가하고 정리하며 결론을 내다보니 나무람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직업적 습관이 있다는 의미는 평소 성실하게 업무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업무에 몰입하고 루틴이 체화되어 있기에, 무의식적 관성으로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직업적 습관이 일상에서도 모습을 보일 때, 상대방은 물론 자신도 가끔 놀랄 수도 있음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삶의 분리가 균형을 위해 중요하다는 견해가 최근 각광받고 있습니다. 일과 삶이 뒤섞이기보다는 물리적·심리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보다 균형있다는 것인데, 한 번쯤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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