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5)-‘표지갈이’ 저작권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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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5)-‘표지갈이’ 저작권법 위반
  • 신종범
  • 승인 2021.08.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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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최근 대법원은 전공서적을 발간하면서 실제 저술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교수들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올려준 대학교수에게 저작권법 위반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내 대학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로 재직하던 A는 자신이 쓴 대학 전공서적 등을 출간하면서 출판사 측이 B 등 다른 교수들도 공저자로 추가하자고 하자 이를 승낙했다. B 등 다른 교수들도 이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 A의 책은 A 뿐만 아니라 B 등 다른 교수들까지 공저자로 표기돼 출간됐다.

이처럼, 저자가 아닌 사람을 저자로 표시하여 책을 출간하거나, 다른 학자의 책을 저자명만 바꿔 새로 출판하는 것을 일명 ‘표지갈이’라고 한다. ‘표지갈이’는 저자가 아닌 교수들에게는 재임용시 요구되는 연구실적을 부풀릴 수 있고, 출판사는 팔리지 않은 전공서적 재고를 처리할 수 있으며, 원저자는 인세를 추가로 수령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해 이루어진다,

한편,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는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 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하여 ‘부정발행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검찰은 책의 저자인 A교수와 저자가 아닌 B교수 등을 모두 ‘부정발행죄’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의 쟁점은 저작권자 자신도 ‘부정발행죄’의 주체가 될 수 있는지(A교수의 경우),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어 저작자로 표시된 경우에도 ‘부정발행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B교수 등)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저작권법 제137조 1항 1호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타인의 저작물에 저작자로 표시된 저작자 아닌 자의 인격적 권리나 자신의 의사에 반해 자신의 저작물에 저작자 아닌 자가 저작자로 표시된 데 따른 실제 저작자의 인격적 권리 뿐만 아니라 저작자 명의에 관한 사회 일반의 신뢰도 보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밝히면서 “이러한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해 저작물을 공표한 이상 이 규정에 따른 범죄는 성립하고 사회통념에 비추어 사회 일반의 신뢰가 손상되지 않는다고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닌 한 그러한 공표에 저작자 아닌 자와 실제 저작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며 “실제 저작자가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표시해 저작물을 공표하는 범행에 가담했다면 저작권법 제137조 1항 1호 위반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시하여 저작자인 A교수와 저작자 아닌 B교수 등 모두에게 저작권법상 ‘부정발행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저작권법상 ‘부정발행죄’의 보호법익이 저작자 또는 저작자 아닌 자의 인격적 권리 뿐만 아니라 저작자 명의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보호에도 있으므로 저작자와 저작자 아닌 자의 동의가 있더라도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위 사례에서 원래 A교수 단독 저작물인 전공서적이 B교수 등이 공저자로 표시됨으로써 저작물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볼 때 대법원 판결은 타당하다고 본다.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출판업계에서 성행한 수법이라고 하고, 지난 2015년에는 ‘표지갈이’에 가담한 대학교수 등 약 180여명이 저작권법 위반과 업무방해 또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무더기 기소되어 처벌을 받은 사실이 있음에도 아직까지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조류 등 동물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털갈이’를 하지만 ‘표지갈이’를 통해서는 변화 하는 교육환경에 더 이상 적응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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