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4-법학적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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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4-법학적 확률
  • 손호영
  • 승인 2021.08.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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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배우자를 살해한 혐의로 피고인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배우자에게 가정폭력을 오랜 기간 행사했음을 살해행위의 정황증거로 제출합니다. 변호인은 “배우자에 대하여 가정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실제로 배우자를 살해하는 경우는 2,500명 중 1명에 불과합니다.”라고 주장하며 피고인을 변호합니다. 확률적으로 0.04%에 해당하니, 피고인이 설령 가정폭력을 행사해왔다고 한들, 배우자를 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가도 갸웃하게 되는 논증입니다. 이럴 때는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정폭력을 겪는 기혼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에 의해 살해될 확률”을 묻지 말고, “가정폭력을 겪는 기혼 배우자가 살해되었을 때, 그 범인이 상대 배우자일 확률”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후자는 대략 80%의 확률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변호인의 주장은 논파될 수 있습니다.

어떤 백인이 ‘강력범죄의 가해자가 백인일 경우 4%가 흑인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가해자가 흑인일 경우 약 40%가 백인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내용의 ‘강력범죄 가해자의 인종별 피해자 분포’ 확률을 보았다고 상정해봅니다. 이를 본 그는 흑인에 분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 확률에는 인종집단별 인구수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백인의 인구와 흑인의 인구 수를 고려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중심으로 위 분포를 재차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고 합니다. “백인 피해자의 56%가 백인 범죄자로부터, 흑인 피해자의 62%가 흑인 범죄자로부터 각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확률을 다룰 때는 신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자칫 본뜻과 다르게 오독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확률은 ‘공정’이라는 개념을 내재하고 있다는 발견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확률은 파스칼과 페르마가 도박에서 나오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서 그 학문이 발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이들이 세 번 이기면 승리하는 게임을 하는데, 한 사람이 한 번 이긴 뒤 게임을 중단해야 할 경우, 판돈의 분배를 어떻게 해야 될 것인지를 고민하던 와중에 확률을 포착한 것입니다(점수 문제: problem of points). 그런데 이들은 이와 같은 확률을 고민할 때, ‘기댓값’을 중심으로 논의했다고 합니다. 즉, 게임에 참가할 때 내야 하는 돈(참가비)이 바로 ‘게임의 값’과 같아야 하며, 이때 게임의 값이 바로 게임참가자의 ‘기대하는 값(기댓값)’이라는 것에 우선 주목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게임을 일종의 ‘거래’로 보고, ‘정당하게 게임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 또는 계약’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댓값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내야 할 공정한 값’을 구하려는 것과 다름없고, 기댓값의 배경에는 ‘공정’이라는 법적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확률은 단지 수학을 넘어 법학적 사고와도 연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법학에서도 통계와 확률 개념이 쓰이는 것도 크게 놀랍지만은 않고, 확률을 다룰 때 공정한 값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명제를 이끌어내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할 것입니다.

민법 제758조 제1항은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상의 하자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는 공작물점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손해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소유자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공작물의 관리자는 위험의 방지에 필요한 주의를 다하여야 하고, 만일에 위험이 현실화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들에게 배상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공평하다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위 하자 여부를 판단할 때,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의 정도, 위험이 현실화하여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침해되는 법익의 중대성과 피해의 정도,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에 드는 비용이나 위험방지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면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합니다(대법원 2017다14895 판결). 즉,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를 하는 데 드는 비용(B)과 사고가 발생할 확률(P) 및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의 정도(L)를 살펴, ‘B 〈 P·L’인 경우에는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하여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공작물의 점유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한다는 접근입니다(Hand Rule).

대법원이 제시한 위와 같은 접근 방식은 확률을 직접적으로 법학적 판단에 개입시킨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하며 유용한 접근방식이라고 할 것이지만, 결국 확률을 어떻게 산정하는지의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이는 수학적 문제인 동시에 법적 문제가 될 것이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중하고 공정히 산정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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