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1세대 형사소송법학자 김기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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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1세대 형사소송법학자 김기두 교수
  • 하태영
  • 승인 2021.08.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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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기두 교수는 1920년 8월 21일 전남 구례 길산(吉山)에서 출생하였다. 2021년 8월은 탄생 101주년이 된다. 한국 형사소송법 제1세대이다. 전주, 광주, 도쿄, 서울, 부산, 하버드, 관악에서 연구하시다 삶을 마치신 분이다. ‘제1세대 한국 형사소송법의 선구자’, ‘인권옹호’와 ‘당사자주의 소송구조를’를 강조하신 분이다. 범죄의 심각성, 특히 소년범죄의 심각성을 예견하고 ‘범죄문제연구소’를 창설해야 한다고 역설하신 분이다. 지금의 ‘한국형사ㆍ법무정책연구원’이다. 1970년 10월 10일 정통전문학술서인 『改稿 新刑事訴訟法』을 출판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가로로 쓴 형사소송법 교과서다(373면).

김기두(1920-1993) 교수의 생활철학은 다음의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인생은 긴 여정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단단히 나아가 주길 바란다. 달리니깐 불안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깨닫는 것이 증가한다. 노인에게 묻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이다. 형식보다는 내용이다.”(김기두‧강구진, 대담 : 김기두박사의 인간과 학문, 18면). 김기두 교수는 근대형 자유인을 동경하였다. 봉건과 근대가 서로 얽혀 있는 가정사와 대학사회에서 매일 고뇌한 인물이었다. 친족 관계와 가족 부양도 생활관에 깊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항상 고뇌했다. 근대의 고뇌를 말한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끼(夏目漱石, 1867.2.9.-1916.12.9.)의 소설 ‘마음’(こころ)의 한 단락이다. “나는 훗날 그런 오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고 싶네. 나는 지금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차라리 외로운 지금의 상태로 버텨가고 싶네. 자유, 독립,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가득 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가 이 외로움을 맛봐야겠지.”

나는 매사에 이런 생각을 신앙처럼 품고 계셨던 김기두 교수를 생각한다. 냉철한 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고 세상을 관조하는 분이었을 것이다. 그의 수필집 『秀才論』(박영사, 1970) 곳곳에서 느낌을 받았다. 불교 말씀과 동양고전 「중용」의 말씀도 인용하고 있었다. 인생 전반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독과 분노’이었을 것이다. 유학생의 고독, 해방정국의 고독, 6.25의 고독, 독재 시대의 고독, 민주화 시대의 고독, 근대의 고독(가정, 학교, 강의, 연구, 직업으로서 학문), 근대 법사상의 고독(자유, 개인, 인권, 민주, 행복, 국민, 외로움에 연대의식), 나는 이것이 김기두 교수의 법사상의 저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한국 제1세대 근대법학자들의 공통된 고민이었을 것이다. 해방 후 33년의 생활은 고독과 분노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글로 표현되었다.

김기두 교수는 교과서‧논문‧논단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형사소송법학·형사철학·형사정책 법사상은 다음의 문장에서 잘 나타난다. “일부 법조인들 간에는 불비된 당사자주의보다는 직권주의로 환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반동적 이론이 나오고 있으나, 이것은 일시적 지장 때문에 대원칙을 무시하는 단견이라고 하겠고, 이러한 당사자주의의 구체적 실현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형사소송법학이라고 하겠다.”(형사소송법이 전제하는 인간상, 秀才論(김기두 에세이집), 426-428면). “판결이유의 작성에 있어서 그 용어가 난해하다. 민주국가의 민주재판은 민중이 용이하게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이어야 한다. 재판의 내용과 표현도 평명간이(平明簡易)하고 누구든지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판결이유가 작성되어야 한다. 관료독재의 일제시대 판결이유 작성을 답습하고 있다. ‘유(有)하다’, ‘상도(想到)한다’, ‘비(比)를’, ‘심안(審按)컨대’ 등을 들 수 있다. 평이한 우리말로 대치해도 곤란한 일이 아니다. 이는 재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신선한 민주재판의 향기를 감돌게 하는 것이다.” “일본도 과거의 문어체의 판결문을 버리고 구어체 문장으로 바꾼 지 오래다. 이는 한국의 재판서작성에 관한 전체적인 문제이다.”(정당방위(판례연구), 서울대학교 법학 제1권 제1호, 1959, 223면).

김기두 교수가 한국 사회에 남긴 유언은 다음의 문장에서 잘 나타난다. “사심 없는 공정무사(公正無私)한 자세는 경중지수(鏡中止水)와 같이 고요하고 맑아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사물이 제대로 영사되기 때문이다. 객관적 인식능력 있는 사람을 양성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정의와 질서를 희구하는 이 나라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객관성의 결핍, 사법행정 제15권 제10호, 1974, 3면). “세계는 대전환을 하고 있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겨레는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선조들의 역사적 교훈인 애타주의와 희생정신이 새로운 현대사회의 정신적 기반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하여야 하리라 믿는다.”(애타주의와 희생정신, 사법행정 제14권 제12호, 1973, 7면). 53세에 쓴 글이다.

하태영 동아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상(思想, Gedanke) 연구는 ‘사유방식을 따라가는 것’, ‘사유철학을 숙독하는 것’, 그리고 ‘사유내용을 계승하는 것’이다. 김기두 교수에 대한 추모 헌정논문이 있다(하태영, 제1세대 형사소송법학자 김기두 교수의 생애와 법사상,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형사소송 이론과 실무」 제13권 제2호 (2021.06) 1∼51면). 심사평이 인상적이다. “이 글의 저자는 심사자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100년의 세월을 함부로 흉내 내기 어려운 간결한 문장으로 잘 전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길고 깊은 분석을 통하지 않고서도 옛 학자의 글이 품고 있는 빛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주옥같은 글이자, 형사법학자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자료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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