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혐오하는 자와 부추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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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혐오하는 자와 부추기는 자
  • 최용성
  • 승인 2021.08.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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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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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결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사람들의 소통방식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특히 정보의 유통이 즉각적이고 동시적이라는 점에서 종래 정보의 유통을 주도하던 전통매체(legacy media) 특히 종이매체가 입은 타격은 크다. 마감 시간에 맞춰 급하게 찍어내던 종이신문은, 조간이든 석간이든, 인터넷 매체의 실시간 속보성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사를 보고 댓글로 개개인의 의사를 즉시 표현할 수 있게 된 점이야말로 전통매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인터넷 매체의 쌍방향 소통(실제로는 쌍방향 소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종이매체에 비교하면 그렇게라도 보인다는 것이 중요하다)을 보여주는 최대 장점이다. 기존의 전통매체가 제공하던 정보를 소비하던 무기력한 개인이 마치 정보유통의 주체가 된 것 같은―실은 착각이더라도―묘한(?) 보람을 얻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초기에 종이매체들은 대응 기회를 놓쳤고, 포털에 종속되었다. 포털은 전통매체로부터 무료로 기사를 받고 기사의 노출 여부를 자체 결정한다. 원래는 언론매체가 아닌 포털이 별다른 노력 없이 실제 가장 막강한 언론매체가 되었고, 전통 매체들은 무료로 기사를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셈이다. 인터넷으로 보는 ‘기사’를 비롯한 거의 모든 정보는 무료라는 인식이 대세가 되었다. 돈을 내고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덩달아 광고 수익도 줄게 되니, 전통 매체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포털에 올린 기사의 조회 수를 통한 광고 수익에 매달리게 되었다. 조회 수를 늘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선정적이거나 선동적인 표현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된다. 그 결과 사실에 충실히 하고자 노력하였던 기사 작성의 기본 원칙은 사라지고, 온갖 자극적인 내용과 문구로 도배한 기사와 그걸 ‘창의적으로’ 베껴 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정론과 품격으로 경쟁하여야 하는 전통 매체들마저 선정적인 황색언론이 되어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황색언론은 대중의 천박한 호기심을 건드려 장사하는 저급 매체를 비판하던 단어인데, 현재 인터넷 매체 대다수가 황색언론화되어간다는 지적에 반박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물론 심층 취재와 분석이 돋보이는 ‘시사인’ 같은 매체도 다행히, 힘겹게나마, 존재한다). 개별 기사나 칼럼의 수준을 놓고 보면 내용이나 문장의 수준이 조악해진 경우도 많다. 과거에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김중권이나 최일남 같은 일류 칼럼니스트를 더는 볼 수 없다는 것도 슬프다. 인터넷 매체에는 활자매체에 부여하였던 무거운 의미와 책임 의식(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였던 진지한 유료독자와 기자정신을 요구하는 시스템)이 아예 없다. 인터넷 매체에 실린 기사를 대하는 독자들도 대충 훑어보고는, 깊은 사유의 과정 없이 바로 댓글을 단다. 이것은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갈등 속에서 적정한 공론의 장을 만들어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게 돕는 언론의 주된 기능이 마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는, 끊임없는 가짜뉴스의 범람, 논쟁의 가치가 없는 잘못된 논란 만들기, 이로 인하여 공동체 구성원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오히려 조장하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도쿄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를 둘러싼 페미니즘 대 안티페미니즘 ‘논란’ 기사들은 부끄러운 언론의 현주소를 여과 없이 드러낸 사례이다.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불가결한 인권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모든 생각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 인권이 억압되어 온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페미니즘은 그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이념으로 등장하였다. 현재도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 현실이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여기에 반페미니즘을 내건 주장이 도대체 어떤 역사적‧헌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힘든 삶 속에서 생겨나는 불만을 분출하는 통로로 혐오할 대상을 찾는 잘못된 사고의 결과일 뿐이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의 글이나 인터넷 기사 댓글에서 우리는 이런 ‘반(反)-’으로 무장한 전사들을 수없이 만난다. 그들은 여성을, 무슬림을, 다문화 가정을, 난민을, 조선족을 비난하고 공포심과 혐오감을 조장해낸다. 한마디로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반헌법적‧반인권적 이야기들이다.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영향력이 커지려고 하면 오히려 언론 매체가 나서서 따끔하게 비판할 일이다. 이것을 허황된 ‘…논란’으로 만들어 마치 동등한 가치가 대립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만드는 일은 공론의 장을 왜곡하여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혐오를 계속 부추기는 큰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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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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