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와 북한에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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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와 북한에의 함의
  • 신희섭
  • 승인 2021.07.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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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있다. 이로써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패전으로 기록될 것이다. 게다가 2001년 시작했으니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치른 ‘열전(hot war)’으로도 남을 것이다.

미국의 패배는 놀랍다. 또한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의 연승 행진도 놀랍다. 무엇이 더 놀라울지는 보는 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패권국 미국의 패배가 더욱 놀랍다.

미국은 1973년 베트남전에서도 패배했다. 1964년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지상군을 파병한 미국은 그 당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9년 동안의 어질어질하고 지긋지긋한 밀림에서 벗어났을 때 미국은 패배한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2001년 9.11 테러를 겪었고, 그 연장 선상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20년 동안의 어질어질하고 지긋지긋한 고산지대에서 나왔을 때 또다시 패배한 자신을 보고 있다.

패권 국가. 잘 모르는 국가와 지정학적 중요성이 낮은 지역. 목적이 불분명한 전쟁. 전투의 승리와 역설적인 전쟁패배. 압도적인 물량의 공중 폭격. 엄청난 전쟁비용 부담. 베트남 전쟁과 그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 미국은 왜 똑같은 실패를 반복했을까!

미국이 경험한 두 번의 패전에서 확실해진 것들이 있다. 크게 3가지다. 첫째, 부유하고 군사력을 많이 갖춘 것이 전쟁 승리에 결정적 변수가 못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해·공군력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전쟁 수행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수반했다. 전투기를 한 회 출격시켜 몇 발의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만으로도 1억 원 이상이 지출된다. 그러나 비싼 항공유와 고가의 스마트 폭탄을 탑재한 전투기 출격이 탈레반의 게릴라 전술을 얼마나 무력화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반면 산악에서 매복하고 장기간에 걸쳐서 싸우는 이들에겐 그저 식량과 탄약만 있으면 된다. 이런 비대칭적인 전쟁을 10년 이상 수행하면 부유한 국가의 국민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다.

둘째, 전쟁은 목적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목적으로 내걸었다. 물론 추상적 가치가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현실적인 전쟁의 목적으로는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테러와의 전쟁 역시 추상적 가치를 내세웠다. 이 전쟁 초반은 미국을 공격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에 복수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이 목표를 넘어선 순간 전쟁의 목적은 모호해졌다. 지긋지긋한 베트남밀림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나, 높고 추운 고산지대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나 미국은 모두 더는 전쟁을 끌고갈 불쏘시개가 없어진 것이다.

셋째, 방어적 전쟁과 원거리 전장에서 싸우는 전쟁에서 누가 미국을 지원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외부 지원이 부족했던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북베트남으로부터 남베트남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남베트남인들은 존슨보다는 호찌민을 따랐다. 남베트남 정부의 고질적인 무능과 부패는 미군이 “왜 우리가 이들을 위해 싸우는가?”를 고민하게 했다. 미군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땅에서 우호적이지 않은 이들의 도움 없이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은 더 열악한 조건에서 싸웠다. 알카에다를 은닉해준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에서 미국은 탈레반을 완전히 축출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세워준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무능과 부패 때문에 또다시 고통을 받았다. 게다가 이슬람 신앙으로 무장한 이들은 계속 탈레반을 지지하면서 미국을 거부하였다.

미국은 다시 한번 가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국가에 패배하였다. 문제는 이 패배가 북한을 상대하고 있는 한국에 상반된 함의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사하게 배울 부분이다. 첫째, 더 부유하고 기술발전이 된 국가가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벌어지고 초반에 전쟁이 종결되지 못한다면, 비용 지출이 많은 국가가 장기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북한위협이 현실화한다면 신속한 승리를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국내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안보에서는 행위자 간 목적이 상이하면 안 된다. 정치적 분배게임에서 논쟁과 안보에서 적과 동지를 규정하는 논쟁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분배정치는 계급 충돌로 끝이 나지만, 안보정치에서는 ‘생존’이라는 국제정치의 전제조건이 붕괴할 수 있다. ‘베트남전’이나 ‘제2의 베트남전’을 언급하면서 국내정치를 우려하는 논리를 수구적 반공 논리로만 내몰 수 없는 이유다.

반면에 차이점도 명확하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게릴라 전쟁에서만 승리할 수 있다. 지정학적 조건상 방어와 장기전이 유리하다. 그들은 상대를 괴롭혀서 상대가 먼저 나가떨어지게 하는 전략을 써왔고,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상대한 모든 제국은 그렇게 나가떨어졌다. 북한도 게릴라 전술을 사용하고, 강한 상대가 먼저 나가떨어지게 하는 전략을 쓰고 있지만, 지정학 조건상 공격전략도 갖추고 있기도 하다. 북한의 기습공격에 이은 정치적 협상을 통한 승리 구축이라는 전략은 아프가니스탄과 다르다. 게다가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 또한 보유하고 있다.

다른 점도 명확하다. 첫째, 북한은 전쟁의 목표를 이루고 내부적인 지지를 이끌 수 있는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조국의 독립을, 아프가니스탄은 수니파 이슬람의 수호를 목표로 한다. 강력한 대의명분과 목표가 자신들의 목숨을 내놓게 했고, 결국 패권 국가 미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 전쟁이 벌어졌을 때 북한 정부가 동일하게 주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장기간에 걸쳐서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장마당 경제로 계급 간 차이를 적나라하게 경험한 북한 주민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얼마나 김정은과 그의 가족들만을 위한 체제에 동조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북한을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인가? 그것은 아니다. 북한은 아프가니스탄만큼 열악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으로 여전히 위협을 가하고 있다. 그럼 탈레반에 의해 점령당해가는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남한에도 그대로 투영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기엔 북한이 단합된 능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으며, 대한민국 내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시대착오적인 이들이 국가를 이끌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측정 가능한 권력인 부(wealth)나 기술에 기반한 군사력이 만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이나 경험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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