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1-이런 거짓, 저런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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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31-이런 거짓, 저런 거짓
  • 손호영
  • 승인 2021.07.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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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팬암(PanAm)의 기장이 당당하게 걸어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에서, 성공의 기운이 흘러나왔던 모양입니다. 남자는 파일럿의 유니폼을 구매하여 입고는, 스스로 부기장인 것처럼 행세하기 시작합니다. 위조한 수표를 신뢰감 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외과 의사로 탈바꿈하고, 신분을 여러 개 만들기도 합니다. 비상한 머리와 화려한 언변으로, 보고 들은 내용만으로도 전문가다움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허랑한 정체를 알지 못하고 그를 대책 없이 믿을 때, FBI의 위조 수사관은 그를 쫓습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 살아가며, 자신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함을 느끼는 남자는 수사관에게 전화를 겁니다. 응대를 잠잠히 해주던 수사관은 일침을 가합니다. “너는 전화할 상대가 없어서 나에게 전화한 거야.” 거짓의 속살은 외로움임을 수사관은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은 수표위조를 업으로 삼아 사기를 치고 다니던 한 남자의 겉과 속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남자가 발산하는 경쾌한 겉매력은 사실 부실한 가면 같은 것입니다. 거짓이 꾸민 호화로움에 속았던 사람들이 그의 속내를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거짓은 다른 이의 재산을 긁어내는 것이니, 공격형 거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이 이득을 보는 것을 법이 가만둘 리 없습니다. 공격형 거짓을 일삼는 사람을 세상에서는 사기꾼이라 하고, 법은 사기꾼을 엄벌하고 있습니다.

공격형 거짓 이외에 방어형 거짓은 없을까 생각해봅니다. 위태롭고 불안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방어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방편으로 하는 경우입니다.

동네에서 쌀 한 말이 없어졌습니다. 범인을 잡아야겠다 모인 어른들이 중지를 모아 그 방법을 곰곰 생각하더니, 늦은 밤 캄캄한 방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대뜸 속 깊은 항아리를 어렵게 준비해왔다고 말하면서, “여기 혹시 쌀을 절취한 사람이 있는가?” 묻습니다. 모두가 조용합니다. “결백하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항아리에 손을 넣어보아라. 여기 항아리 속에는 영험한 쥐가 있는데, 거짓을 말하는 자의 손은 깨물고, 그렇지 않은 자의 손을 깨물지 않는다. 엉뚱하게 누명 쓰지 말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을 집어 넣어보아라.” 어른들의 으름장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항아리에 손을 넣습니다. 이윽고 횃불을 켜자, 모두 손이 새까만데, 한 사람만 맨손입니다. 어른들은 쥐가 아닌 먹물을 넣어두었고, 죄 있는 사람은 자칫 물릴까 봐 항아리에 손 넣는 시늉만 했던 탓입니다.

<항아리로 잡은 도둑 설화>에서는 기지(機智)에 의한 범인 찾기를 보여줍니다. 성공적이라며 지혜롭다 할 수도 있지만, 설화를 조금 비틀어보면 내용이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만약 항아리에 손을 넣은 사람이 정말로 범인이 아니라면? 그는 쌀 한 말을 가져간 범인을 알고 있는데, 그가 자신의 가족이었다면? 그리고 그 가족은 배곯는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몰래 그러한 행위를 했던 것이라면? 그래서 뜻밖의 밥 한 그릇에 온 가족이 기뻐했더라면? 과연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은 행위를 온전히 비난만 할 수 있을지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법은 이러한 방어형 거짓에 대해서는 개입을 자제합니다. 헌법 제12조 제2항이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이 “피고인은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제238조의2 제1항).”, “누구든지 자기나 친족 또는 친족관계가 있었던 자, 법정대리인, 후견감독인에 해당한 관계있는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제148조).”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살펴볼 거짓은 하얀 거짓입니다. 사실은 친생부모가 아닌데, 아이를 자식으로 기를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 입양을 하지 않고 친생자출생신고를 하는 경우가 종래 있어 왔습니다. 이러한 경우, 친생자가 아니라며 출생신고의 효력을 부인할지, 아니면 입양신고로서의 효력은 있는 것이라 할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엄밀히 보면 거짓으로 법적 관계를 신고한 것이지만, 실상은 진정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당사자가 양친자관계를 창설할 의사로 친생자출생신고를 하고 거기에 입양의 실질적 요건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면 그 형식에 다소 잘못이 있더라도 입양의 효력이 발생하고... 이 경우의 허위의 친생자출생신고는 법률상의 친자관계인 양친자관계를 공시하는 입양신고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여, 하얀 거짓을 진실에 부합하도록 하는 판단을 합니다(2000므1493 전원합의체 판결).

거짓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각 유형에 따라 법과 판례가 다르게 대처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거짓이라고 하여 모두 일률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고, 각 거짓이 가진 의미와 배경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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