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3)-‘살인의 추억’과 공소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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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3)-‘살인의 추억’과 공소시효
  • 신종범
  • 승인 2021.07.2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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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영화 ‘살인의 추억’ 속 경찰은 연쇄 살인범을 잡지 못했지만, 현실의 경찰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화성 연쇄 살인범을 붙잡았다. 그런데, 경찰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에서 연쇄 살인범만을 잡은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 억울한 옥살이도 살게 했다.

이른바 화성 연쇄 살인 8차 사건 이야기다. 진범인 이춘재의 진술에서 시작된 사건의 진실은 조사결과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이 범죄와 무관한 윤모씨를 불법체포해 감금한 후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고 증거까지 조작해 범인을 만들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을 불법체포, 감금, 독직폭행,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살인 사건을 아예 덮어버리기도 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중 하나를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해 버린 것이다. 이 역시 진범 이춘재의 자백으로 진상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조사 결과 당시 경찰들은 피해자의 시체를 발견하고도 이를 은닉하고, 다른 증거까지 없앤 것으로 밝혀졌다. 아직까지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진실을 안 피해자의 유족들은 당시 사건 은폐에 가담한 경찰들을 고발했지만, 고발 1년만에 유족에게 돌아온 것은 불기소결정문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것이다.

공소시효는 범죄행위가 종료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날 때까지 그 범죄에 대하여 기소를 하지 않는 경우에 국가의 소추권(訴追權)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검사는 공소권 없음의 불기소처분을 하게 되고, 공소가 제기된 후에 공소시효가 지났음이 판명된 경우에는 법원은 면소(免訴)의 판결을 해야 한다.

범죄행위에는 그에 응당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 정당하고 당연한 일임에도 공소시효 제도를 두는 이유는, 범죄가 발생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당사자들의 사건에 대한 기억은 부정확해지고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므로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워지는 점(재판의 공정성 담보), 범죄가 발생한 후 시간이 흐를수록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감정이나 사회적 감정이 진정되어 처벌의 필요성이 줄어드는데 반해, 사건 이후 형성된 사실상태를 존중하여 사회와 개인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필요성은 증가하는 점(처벌의 필요성 감소),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데 오래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하여 수사를 계속하는 것은 수사의 효율성과 적정성을 떨어뜨리고, 증거 보관·보존에 드는 비용과 자원도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수사의 효율성), 국가의 태만으로 인한 책임을 범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국가형벌권에 권리의 소멸시효 이론 적용)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 관련하여 밝혀진 수사기관의 범죄행위에 대해 다른 일반 범죄와 동일하게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공소시효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전혀 타당하지 않다.

즉, 위 사건들에서는 오히려 증거가 명백히 밝혀져 시간 경과로 인한 재판의 공정성을 해할 위험이 없고, 위 사건의 한 피해자는 장기간 억울한 옥살이 끝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사망한 다른 피해자의 유족들은 이제야 사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 피해자들의 감정이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기관의 범죄행위에 대한 사회적 감정 또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위 사건들은 다른 일반인의 범죄와 달리 수사기관이 수사와 관련하여 범한 범죄로 국가 형벌권의 소멸 이론을 적용할 여지도 없다. 오히려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여 수사의 적법성을 담보할 필요가 훨씬 더 커 보인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형사소송법 등은 위와 같은 수사기관의 수사과정에서의 범죄행위의 대하여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에, 검찰, 경찰, 교정 등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형사피의자 등에 대하여 고문, 폭행, 그 밖의 가혹행위를 한 경우 이는 공권력에 의한 개인의 권리 침해에 해당하고 공권력에 의한 사실은폐나 증거조작 등의 우려도 있으므로 이 경우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공소시효는 국가 소추권 및 형벌권의 남용을 방지 위한 제도이지만, 오히려 공소시효 제도가 남용되어 형사적 정의가 훼손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이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헌정질서 파괴범죄, 살인죄, 일정한 성범죄 등에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고, 미성년 대상 성폭력범죄, 아동학대죄 등에는 성년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법률들이 속속 마련되었지만, 앞에서 살핀 수사기관의 수사와 관련된 범죄행위를 비롯한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권∙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문제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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