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48) / 인생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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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48) / 인생 수업
  • 정명재
  • 승인 2021.07.2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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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며칠 전, 시각 장애를 가진 지인(知人)과 함께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차 안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릴 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장애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부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다, 서른이 넘어 시각에 문제가 생겼고 이로 인해 전혀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인생으로 접어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일상. 청천벽력(靑天霹靂)의 소식에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삶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부모님의 사업실패가 이어졌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우리는 병원에 도착하였고 한참을 기다리다 진료를 받고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생활이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모퉁이에 부딪히는 일이 잦다 보니, 무릎과 다리에는 상처가 성할 날이 없었다. 멍든 자국과 다시 새살이 돋는 일이 반복된 그의 다리에는 운동량이 부족하여 할머니 피부와 같이 하얗고 마른 살이 붙어 있었다.
 

그는 누나 이야기를 이어간다. 올해 세상을 떠난 누나는 갑상선 암으로 시작하여 위암, 대장암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아이 둘을 낳아서 행복한 그녀의 삶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을 만나 더없이 평안한 인생이었다. 대학교수로 있던 남편은 가족을 지극히 살피는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어느 날, 찾아온 병마(病魔)는 결국 길고긴 병원생활로 이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는 고통이 너무 극심해 30분 간격으로 몰핀을 주사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앞이 잘 보이지 않던 그는 누나와의 마지막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을 앞에 두고 마지막 부탁을 했다. “재호야, 나의 사랑하는 동생. 누나가 불쌍해 보이니?” 동생은 잠시 생각을 정리해 답을 한다. “누나, 누나는 착한 아이 둘을 만나 행복했고, 세상에 없을 좋은 남편을 만나 잘 살았어. 난 누나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먼저 가서 기다려. 나도 언젠가 누나를 만나러 갈테니....” 누나는 동생의 말을 지그시 듣고 마지막 힘을 다해 말을 건넨다. “그래, 네가 우리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렴. 그리고 우리 동생이 누나에게 뽀뽀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누나 볼에 뽀뽀 한 번만 해주렴.”

누나를 잃고 세상을 잃은 듯이 며칠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아주 오랜 시간 고독에서 지냈다고 한다. 누나가 가장 즐겨 쓰던 말을 기억하며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실수로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고 나는 그런 그를 위해 나의 하루를 그와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게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날, 차안은 에어컨 바람조차 무더위를 식히진 못했다. 선글라스를 낀 나의 눈에는 그의 이야기에 차안의 열기와 함께 눈물이 흘러 나왔다.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본 것처럼 가슴이 뭉클해졌고 뜨거웠다. 나 역시 일찍이 아버지를 여윈 기억이 있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 하나를 불러낸다. 인생(人生), 그 유한(有限)함에 대하여.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들은 대체로 젊었고 앞에 남은 인생의 시간을 무한히 볼 나이였다. 하지만 최근에 뵙는 수험생들은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았다. 앞만 쳐다보다 우연히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되었고,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관한 고민으로 시작한 공부 인연으로 나를 만난 것이다. 같은 시간이지만 하루의 가치는 제각각이다. 나이가 들어 만나는 하루의 소중함은 시간이 갈수록 절절하고 절실하다. 가족들의 만류(挽留)에도 고집을 피우며 시작한 공부도 있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시작하고 나름의 인생 경험으로 시간을 계산한다. 인생을 먼저 살았다고, 인생을 더 많이 살았다고 하여 그만큼의 지혜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똑같은 인생경험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자의 인연(因緣)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인생 이야기가 있다.

그는 지금 웃고 있다. 그는 지금을 즐기고 있으며 현재를 살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던 그의 굴곡진 인생에는 고통을 이겨내며 얻은 멍 자국과 굳은살로 단련된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슴으로 기억하는 사랑의 추억이 그를 지탱하고,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보이는 고통은 무궁무진(無窮無盡)하다. 배고픔과 빈곤(貧困)의 굴레에서 허덕이는 삶부터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회한(悔恨)과 욕망의 끝자락에 이르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忿怒)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 실로 그 수(數)를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그날, 나의 인생을 돌아본다. 후회와 아쉬움이 따라오기도 하고 미련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인생이야기에 몰입하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힘든 시간이라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 가는 인생이고 싶진 않다고 늘 고민했지만, 어느 날 돌아보니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인생인 듯하다. 현실에 쫓겨 허덕이는 인생이기도 했고 분주히 고민을 쌓아가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이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지내야겠다. 수험생들의 고민 역시, 합격에만 매달리는 모습이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인생고민이 함께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수험공부를 하는 동안은 누구나 현자(賢者)가 된다. 어떻게 공부하면 합격에 이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법이다.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올바른 길을 찾는 순간 합격에 이르는 정도(正道)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 수업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나의 스승이며 조언자이다. 타인의 삶이 나와 다르지 않고, 타인의 행복과 불행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순간,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지고 밝아진다. 편견과 아집에 빠진 이들은 타인의 불행에 둔감하다. 자신만의 행복에 몰입하는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살필 여유가 없는 법이다. 고통의 긴 터널을 건너본 이들만이 볼 수 있는 세상이 있고, 슬픔의 긴 강을 건너 본 이들만이 공감(共感)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영원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험생이 되었다는 것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금, 걸어가는 수험생의 길에서 인생을 배워라. 그렇게 살며, 사랑하며, 공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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