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는 왜 객관식 평가를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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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는 왜 객관식 평가를 좋아하는가
  • 김용욱
  • 승인 2021.07.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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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는 구술시험을 치렀다. 종이와 펜이 보급되자 등장한 것이 논술식시험이었는데 두 시험의 방식은 심도 있는 질문을 하는 데에는 적합하지만 평가자에 따라 똑같은 답안도 결과가 달라지는 등 객관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단어, 숫자, 짧은 문구로 답할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됐다.

객관식 시험이 대규모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에서다. 프레드릭 켈리(Frederick J. Kelly)가 선다형 문제(multiple choice item)를 개발한 것이 1914년 무렵인데, 대규모 집단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미군은 신병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지능검사에서 이를 도입했고, 소수의 행정관료만으로도 대규모 집단에 대한 평가를 빠르게 측정할 수 있었다. 언어 능력이 다소 부족한 이민자들은 구술이나 에세이 시험에서는 본래 역량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객관식 시험에서는 그러한 핸디캡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학자나 관료가 아닌 군인의 선발에는 적합한 방식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사대부속국민학교에서 1961, 1962년 추첨으로 학생을 뽑은 뒤 지능검사(객관식)를 통해 학급을 나눴고 1963년에는 경쟁률이 20대 1까지 치솟아 오르자 지능검사 결과로 입학생을 선발했다 한다. 1961년 군사 쿠데타 직후에는 학사 자격고사와 대학입학 시험을 국가 차원에서 사지선다형 시험으로 실시했다.

오늘날 객관식 시험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늘 접하곤 한다. 사고력 측정에 취약한 단순 암기식 사고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러한 비판에 100% 동의하기는 어렵다. 객관식 출제 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단순 암기형 단답식 문제가 주였지만 오늘날 PSAT(공직적격성평가)이나 LEET(법학적성시험)를 보면 여러 상황이나 자료 또는 다양한 텍스트를 제시하고 상황에 대한 판단, 통계 분석, 텍스트의 맥락 등을 묻는다. 분석적 사고나 상황에 대한 높은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다. 객관식 시험이 세상을 OX라는 잣대로만 바라보게 한다는 비판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다만, 그 사람의 공직관,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객관식으로 다 평가할 수 없는 상황 판단력, 리더십에 대한 평가 그리고 조직의 관점에서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 등의 목표 달성은 면접이라는 프로세스로 보완하면 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객관식 시험이 지배적 평가 방식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요구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심지어 면접도 공공기관에서는 ‘블라인드 면접’이라 하여 편견을 최대한 배제해 뽑도록 하고 있으며 면접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한 통지의무 부과에 대한 입법적 논의도 활발한 편이다. 모두 공정성을 높이려는 간접적 통제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객관식 평가 없이 면접으로만 채용하는 경우가 흔한 편이다. 면접 기법이나 방식에 있어서도 비교적 다양한 편이다. 일본의 신입 직원 선발에는 서류함 기법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면, 객관식 평가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면접 과정에서 이를 검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의 면접 프로세스는 대체적으로 인성 평가에 비중을 두는데, 서류심사(민간기업, 민경채 등)나 객관식 필기시험, 주관식 논술 시험 등에서 이미 적성에 대한 평가를 마쳤기 때문이다. 물론 고용 후 해고가 어려운 기업적 현실도 또 다른 이유가 된다.

객관식 시험은 우리 사회에서 계속 지배적 평가방식으로 남겠지만, 서서히 사라지기는 할 것이다. 객관식을 시행하는 비용이 너무 높은데 반해 저출산으로 신입 인력은 점차로 줄어들기 때문이다(1971년 출생아 숫자는 103만명이었지만 2020년은 27만명이었다. 50년만에 1/4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공기업 등에서 객관식 시험을 보는 이유 중 하나가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통상 20대 1에서 100대 1까지 치솟곤 하는데 이러한 격심한 경쟁률이 서류심사, 필기시험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거른 상태에서 면접을 치르는데 우리의 경우, 면접 경쟁률이 공무원은 1.2대 1, 공기업은 3대 1 정도인 것도 이런 이유다.

전체 지원 경쟁률 자체가 낮아지면 객관식 시험을 볼 필요조차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2019년 경찰관 채용 경쟁률은 7대 1 수준인데 반해, 같은 해 우리의 경찰 공무원 일반 공채 경쟁률은 30대 1 정도였다. 우리나라 생산 기반의 자동화 비율이 높다는 점이나 서비스업이 일본만큼 발달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다양성에 대한 요구 수준보다 공정성에 대한 요구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점 등의 상황은 또 다른 변수다.

인사혁신처나 각 공공기관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끝없이 선발 방식에 변화를 줄 것이다. 10년쯤 후 우리 사회의 공무원, 공기업 선발 방식은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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