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북한 식량난이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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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북한 식량난이 주는 의미
  • 신희섭
  • 승인 2021.07.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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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2021년 7월 2일 러시아가 평양에 주재하고 있던 대사관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90명 정도의 외교관과 가족들이 러시아로 돌아갔다. 러시아는 대사만 남겼다. 중국을 제외하고, 평양에 주재하고 있던 국가들의 외교관 대부분이 속속 자국으로 철수하고 있다.

평양에서 외교관들이 떠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국경봉쇄로 인해 외교관들조차 생필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상위 엘리트층이 거주하고 있는 평양도 생필품이 모자랄 정도이니 북한 전체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하게 한다.

원래 북한이 물자가 넘쳐나던 곳은 아니다.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평양 류경호텔에서 고위층이나 신흥부자들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소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국경이 봉쇄된 지금 평양은 외교관들마저 본국으로 떠나야 하는 매우 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로부터 100% 자유롭다고 선전하고 있는 북한 정부의 발표와 달리 내부에는 코로나 확진자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제법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북한 내부 정보를 많이 다루는 자유아시아방송은 구체적인 수치를 인용해가면서 확진자나 확진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최근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정부가 코로나 방역에 고강도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자 혹시나 코로나를 포함해 질병에라도 걸리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 외교관 직원들과 가족들은 북한을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10년 이내에 가장 심각한 식량난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북한은 552만 톤의 곡물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기반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북한이 약 85만 8천 톤의 식량 부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국제기구의 발표보다 더 북한 식량난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발표다. 2021년 6월 15일 김정은 총비서는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 현 난국을 반드시 헤쳐나가겠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북한에서 지도자가 식량난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또한, 노동신문은 “식량을 위한 투쟁은 조국을 위한 투쟁”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부족과 그에 대한 대비를 촉구하였다.

식량부족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에 지속해서 북한을 괴롭혀 온 구조적인 문제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국경봉쇄로 비료 지원이 끊긴 데다 2020년 장마와 태풍 피해가 커진 것이 겹치면서 올해 최악의 상황이 되고 있다.

물자 부족과 식량난이 평양을 덮치고 있다. 북한 엘리트층에 심각한 위기가 오고 있다. 과거 위기 상황에서도 고위층은 중국 등에서 물자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상황과 다르다. 과연 평양에 사는 이들은 북한 일반 주민들이 늘 겪어온 물자 부족을 버텨낼 수 있을까!

『독재자의 핸드북』에서 메스키타는 독재국가에서 독재자는 ‘교체가능집단(interchangables)’과 ‘영향력 있는 집단(influentials)’에 대해서는 자원 배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신 권력자의 권력에 직접적인 도전이 될 수 있는 ‘핵심집단(essential)’만을 관리하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독재자를 위협하는 것은 민주화를 추동할 수조차 없는 일반 대중이나 약간의 혜택을 받는 수혜층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당, 정. 군의 요직에 있는 이들이 반기를 드는 상황이 최악이기 때문에 이들만 관리하면 된다.

만일, 이 분석이 타당하다면 평양에 다가오는 위기는 북한을 주기적으로 괴롭히는 위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북한 엘리트들이 사는 평양 주민들에게도 일반 인민들과 같은 위기가 오고, 이를 헤쳐나갈 방법이 없다면 이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대적인 이익과 혜택이 주는 ‘권력감(feeling of power)’으로 버티는 존재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래도 우린 달라”를 느끼면서 만족하는 존재다. 그런 평양 사람들에게 ‘권력감’이 사라진다면 그 결과는 단기적으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영향력 있는 집단’이나 ‘교체가능집단’에 차이는 없고 오직 ‘핵심집단’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들 ‘영향력 있는 집단’은 빠르게 체제 정당성을 부정할 것이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나빠져서 북한 사회를 버티게 해준 장마당 경제가 허물어지고, 평양 주민들도 체제를 지탱할 의지가 없게 될 수 있다. 강권적 통치력에 기대어 체제는 지속하게 하겠지만, 북한 체제의 내구성은 극단적으로 약화할 것이다. 한 번만 바람이 불어도 꺼지는 촛불처럼.

문제는 이런 상황이 우리 대한민국에도 그다지 바람직한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국제사회에도 큰 부담이 된다. 무너지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무너지면 안 되는 존재. 미국과 중국의 권력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애꿎은 북한 주민들만 불쌍하게 되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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