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8-복수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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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8-복수의 서사
  • 손호영
  • 승인 2021.07.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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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춘추시대, 초나라 평왕이 간신의 모함을 받아들여, 오자서의 집안을 박해합니다. 아버지의 처형이 임박하자, 형은 오자서를 탈출시키며 후일을 도모하라 합니다. 아버지는 “오자서가 무사하니, 초나라는 후에 큰 난을 겪을 것이다.”고 장담합니다. 졸지에 아버지와 형을 잃은 오자서는 복수를 다짐하며, 각고 끝에 신흥국 오나라로 향합니다.

오나라의 차기 왕이 될 합려(闔閭)를 만난 오자서는 그의 신뢰를 얻고 중신이 됩니다. 훗날 손자병법으로 불후의 명성을 얻을 손무를 영입하기도 하면서 오나라는 강대해집니다. 이제 오자서는 합려의 허락을 받아 손무와 함께 초나라로 진격합니다.

초나라에 도달하여 수도를 함락했을 때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찾습니다. 세월이 흘러 당시 이미 사망했던 평왕에 대한 복수를, 그의 무덤을 파헤친 뒤 구리 채찍으로 시체를 내려치는 것으로 완성합니다(굴묘편시, 掘墓鞭屍). 복수가 지나치지 않냐며 오자서를 질책하는 초나라의 옛 친구 신포서에게 오자서는 말합니다. “날은 저물고 길이 멀어서(일모도원, 日暮途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오자서의 도움으로 오나라는 부강해지지만, 남쪽 월나라가 힘을 키웁니다. 월왕 구천(勾踐)과 전쟁 중 합려가 부상을 입어 결국 세상을 뜨자 그 아들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복수를 굳게 마음먹습니다. 가시 많은 장작 위에서 잠을 자며(와신, 臥薪), 문을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고 외치게 하여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해 한스러움을 잊지 않습니다. 결국 월나라를 점령해 구천을 포로로 잡는 데 성공합니다.

이번에는 구천 차례입니다. 구천은 포로로 잡혀 노예처럼 지내게 됩니다. 쓸개를 핥아(상담, 嘗膽) 쓴맛을 되씹으며, 나락에 떨어진 자신과 월나라를 기어코 되살리겠다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겉으로는 유약한 척하며 부차의 방심을 키우고, 뇌물을 써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하여 고국으로 귀환한 뒤, 전쟁을 일으켜 이미 자만에 빠진 부차를 포로로 잡아냅니다. 부차는 자신이 자결에 이르게 한 오자서를 볼 낯이 없다며 얼굴을 가린 채 죽음을 택합니다.

사기(史記)에는 초-오-월 세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현실 복수 3중주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줍니다. 오자서가 평왕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부차가 구천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구천이 부차에게 자신의 복수를 이뤄내는 과정을 살펴보면, 처절할 뿐만 아니라 무섭기까지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가지는 미운 마음이 극에 달하고 삶의 목적이 복수가 되었을 때 어떠한 모습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나에게 해를 가한 이에게 같은(또는 그 이상의) 해를 가한다. 간단하고, 직관적인 복수 방정식입니다. 그만큼 선명하기에, 누군가는 통쾌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위험하다 합니다. 복수가 복수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 노인 둘이 내기 장기를 두다가, 수를 물리네 마네 하던 중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얽히고설키던 중, 한 노인이 넘어졌는데 불운하게도 숨을 거둡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앞에 다른 노인도 어쩔 줄 모릅니다. 소식을 듣고 온 가해자 노인의 아들이 곧 자신의 아버지를 기둥에 묶고는, 피해자 노인의 아들을 부릅니다. “자, 죽여라.” 뜻 모를 말에 주춤한 그에게 가해자 노인 아들이 재차 말합니다. “너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니, 어서 죽여라.” 뒷감당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 들은 피해자 노인 아들이 묻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것이지?” “내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너는 우리 아버지를 죽이면 되고, 네가 내 아버지를 죽였으니 나는 너를 죽이면 되고, 너에게 아들이 있지? 그 애가 자라 나를 죽이고, 그러는 거지.” 이쯤 되니 피해자 노인 아들이 아저씨가 어떻게 한 게 아니고 사고인 걸 잘 안다고 합니다.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법은 가해자 노인 아들이 무심히 지적한 복수의 연쇄작용을 경계합니다. 민법 제496조는 “채무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인 때에는 그 채무자는 상계로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의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에 대하여 상계를 허용할 경우 고의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까지도 상계권 행사로 현실적으로 손해배상을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되어 보복적 불법행위를 유발하게 될 우려가 있음을 경계한 것입니다(대법원 2014다19776, 19783 판결). 또한 복수에 대한 값어치를 지나치게 평가하지 않도록 합니다. 즉, 대법원은 “상대방 배우자가 오로지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표면적으로는 이혼에 불응하고 있기는 하나 실제에 있어서는 혼인의 계속과는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행위를 하는 등 이혼의 의사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는 비록 혼인의 파탄에 관하여 전적인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라 할지라도 이를 허용함이 타당하다.”고 합니다(대법원 2014므32953 판결).

사적 복수가 횡행한다면,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정제된 사회가 아니라 날 것의 세상이 될 것을 법은 알고 있습니다. 오자서, 부차, 구천의 끝이 아름답지 않았던 것을 두고, 법과 판례가 복수를 단속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물론 풀어지지 않는 피해자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보듬을 필요 또한 큽니다. 복수에 대한 경계와 피해자의 신원(伸冤)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 그것이 법과 법원의 역할인데, 어려운 일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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