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차가운 죽음, 따뜻한 법
상태바
[칼럼] 차가운 죽음, 따뜻한 법
  • 송기춘
  • 승인 2021.06.25 11: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6월 14일부터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위원장 일을 맡게 되었다. 이 위원회는 1948년 국군이 창설된 이후 최근까지 군에서 발생한 사고 가운데 사망원인이 분명하지 않거나 의문이 있는 경우 진정인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신청하면 조사를 하여 사망사고의 진상을 밝히는 정부기구이다. 직권 조사도 가능하다. 그리하여 그 동안 자식이나 형제를 군대에 보내고 차가운 시신으로 마주 대하게 된 유족들이 겪은 아픔과 억울함을 풀고 망인의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고 나아가 군이 신뢰를 얻고 군인의 인권을 증진시키고자 함이 그 설립 목적이다. 이 위원회의 전신은 노무현 정부 때 구성되었던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군의문사위’)이다.

10여 년 전 군의문사위 시절에 닥친 중요한 법적 논란은 ‘자살처리자’에 대한 예우 문제였다. 자살처리자라는 용어도 생소했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군에서 자살한 사람은 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군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자살로 ‘처리’한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필자는 군에서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법적인 문제를 푸는 과정에 참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군에서 자살한 것은 결코 자살이 아니라는 것, 자살하였다고 하여 그것이 불명예로 평가되어서도 안 되고 전력을 약화시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종종 자살이 사회적 타살로 평가되듯, 군 복무중 자살한 것이 어찌 비난 받아야 할 것이겠는가(필자가 쓴 “군에서 사망한 이들은 국가가 명예로운 죽음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라”는 제목의 글 참조). 아무리 자살한 이의 개인적 책임으로 돌려져야 할 부분이 크다고 해도 국가가 현역으로 복무할 만하다고 판정했고 복무의 현실을 잘 살펴야 했으니, 군인이 군대 안에서 어려움을 겪고 결국 자신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해도 자살이라는 겉모습만으로 국가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는 바로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 뒤 군인사법이 개정되면서 자살이라고 해도 직무관련성을 따져 순직으로 예우하게 되었다. 자살에 관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던 법적 상상력은 이제 구체적 현실이 되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이제 바뀐 법에 따라, 자살한 사람이라고 해도 직무관련성의 정도를 따져 순직 인정재심사를 권고하고 국방부 전공사상심사위원회가 순직의 유형을 결정한다.

그러나 지금은 또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죽음을 구분하는 문제이다. 군에 가서 죽은 것도 억울한데 어떻게 죽었느냐를 따져 순직을 직무관련성에 따라 I~III형으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죽음에는 계급도 없고 등급도 없다. 특히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입대한 사람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현재의 법제도에서 죽음에도 계급이 있는 것은 국립묘지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국립묘지에 장군묘역이 별도로 있다. 묘지의 크기도 다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느냐의 문제가 남을 뿐, 나라를 위한 죽음에 어찌 계급이 있겠는가. 장군이 죽어서 장군묘역에 묻히지 않고 자기 부하 옆에 묻히는 일조차 우리에겐 이례적이다. 미국 워싱턴 디시 부근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는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기본적으로 업적 등에 의해 크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생전의 군대 계급이 묘지의 위치나 크기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 묘지에 가서 필자는 묘지의 구조에 담긴 생각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군 복무 중 질환이 생기거나 악화되어 전역 후 사망한 경우 국가책임이 어디까지인가도 문제이다. 아픈 군인을 전역만 시키면 국가가 복무 때문에 아픈 사람을 돌볼 의무나 이들의 사망(자살 포함)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의 책임이 방치되어 온 영역이다. 아직 위원회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할 뿐이다.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다시 상상력이 필요하다. 법은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죽음 때문에 차가운 눈물을 더 흘리지 않게 해야 한다. 법은 따뜻한 것이어야 한다.

송기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