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6-게임의 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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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6-게임의 본령
  • 손호영
  • 승인 2021.06.2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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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게임(Game)의 역사는 아득합니다. 어떤 이는 게임이 인류 문화의 주된 탄생 조건이었다고까지 할 정도입니다. 과장이라고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무언가 결정할 때, 사다리를 타거나(사다리 게임),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하는 것도 게임의 일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게임은 일상 도처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과 사람이 서로 맞붙어 대결하고자 할 때 택한 방식도 바둑이라는 게임이었습니다. 상하종횡으로 각 19줄이 그려 있는 판에서, 돌을 선의 교차점에 번갈아 두며, 상대보다 ‘집’을 많이 만드는 ‘바둑’은, 대략 10의 171제곱만큼 배치의 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방대한 가능성 앞에서, 과연 인공지능과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수읽기를 할지 모두가 흥미진진 관심 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게임은 그저 놀이에서, 철학으로까지 승화되기도 합니다. 바둑에서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고 하여 바둑에 임하는 자세와 요령을 10가지로 정리하는데, 너무 이기려 하지 마라(부득탐승, 不得貪勝), 작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먼저 얻으라(사소취대, 捨小就大)와 같은 구절은 교훈적이기까지 합니다.

게임은 여러 형태와 종류가 있습니다. 주사위 게임, 카드 게임, 보드 게임 등 다양하게 그 양태가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현대에는 컴퓨터 게임이 단연 게임계의 대표라 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접한 컴퓨터 게임은, 일본 코에이(KOEI)의 삼국지Ⅱ였습니다. 스스로 삼국지 역사상의 인물이 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단순한 커맨드와 간단한 그래픽이지만, 당시에는 그 매력에 한껏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략집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며 골몰했는데, 덕분에 삼국지에 대한 흥미가 생겨, 이문열 삼국지 평역을 읽게 되고, 나이가 들어서는 정사 삼국지를 접하게 되었으니, 게임의 효용이 교양에까지 미친다는 좋은 증례이지 않은가 합니다.

이후 게임에는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다가, 몇 년 전 미국 블리자드(Blizzard)의 오버워치(Overwatch)라는 게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버워치는, 여러 명이 팀을 나누어 서로 대결을 하는 FPS 게임(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슈팅 게임)이었습니다. 조준이 서툴러, 초보가 운용해도 적당한 캐릭터를 골랐습니다. 정교한 조준은 저에게는 머나먼 길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상대편은 기가 막힌 실력을 뽐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상대에 대한 찬탄과 스스로에 대한 한탄으로 게임을 접었습니다.

나중에 “자동 조준 프로그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음 사격이 성공한 다음부터 상대방 캐릭터를 자동으로 조준해 주는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이 횡행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렵기 마련입니다. 실력이 부족한 것은 인정할 수 있고, 더 나아지려는 향상심도 생기지만, 상대가 치트(cheat)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프로그램이 제법 유통되어 문제가 되자, 마침내 수사기관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판매한 사람을 “정당한 사유 없이 악성 프로그램의 전달 또는 유포”하였다며,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으로 기소하였다고 합니다.

2심에서는 이를 유죄로 보았습니다. 2심은 “이용자가 스스로의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에 의존하여 단시간에 상대팀 캐릭터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를 정확하게 조준하여 발사하는 것은 이 사건 게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본 요소”라고 하며, “이 사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개발자가 예정하지 아니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통하여 게임 수행에 있어 중요한 기본 요소를 위 프로그램에 의한 자동수행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은 이 사건 게임이 예정하고 있던...이 사건 게임의 운용을 전반적으로 현저히 해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다른 이용자들에게 게임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게임 자체에 대한 흥미와 경쟁심 등을 잃게 만들어 게임의 정상적인 운영을 불가능하게 한다.”고 보았습니다(인천지법 2018노2183).

그러나 3심은 달랐습니다. “이 사건 프로그램이 서버를 점거함으로써 다른 이용자들의 서버 접속 시간을 지연시키거나 서버 접속을 어렵게 만들고 서버에 대량의 네트워크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등으로 정보통신시스템 등의 기능 수행에 장애를 일으킨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하며, 이 사건 프로그램이 위 법상의 “악성프로그램”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9도2862).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의 위반 여부에 대하여 2심과 3심의 판단이 달랐던 것은, 위 법상 “악성 프로그램”의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1, 2, 3심은 모두 피고인이 “게임물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할 목적으로 게임물 관련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아니한 컴퓨터프로그램을 배포”한 점에 대하여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위반”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프로그램이 게임의 본령을 해친다는 것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임의 본령이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최선을 다해 몰입하며 얻는 재미라고 할 것인데, 과연 프로그램이 대신 해주는 치트(cheat)가 사용될 때, 이를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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