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5-탐정의 경계(境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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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5-탐정의 경계(境界)
  • 손호영
  • 승인 2021.06.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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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의사 조셉 벨은 사람을 관찰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상피병(elephantiasis)을 앓고 있다는 초진 환자가 모자를 쓴 채로 진료실로 들어옵니다. 조셉 벨이 슬쩍 보더니 대뜸 말합니다. “군대를 다녀오셨군요.” “그렇습니다.” “제대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요?” “그렇습니다.”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A Highland regiment)셨죠?” “그렇습니다. “파견지는 바베이도스(Barbados)인가요?”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조셉 벨은 모든 것을 알아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공손한 태도이면서도 모자를 벗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모자를 벗지 않는 군대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민간인의 방식을 습득하기에는 제대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상피병을 앓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서인도제도에서 생길 수 있는 병입니다. 현재 왕립 스코틀랜드 연대가 그곳에 있고, 권위 있는 모습(air of authority)도 엿보이므로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조셉 벨의 빼어난 관찰력과 탁월한 추리는 코난 도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는 조셉 벨을 모델로 해 전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코난 도일이 만들어낸 셜록 홈즈는 조셉 벨의 방식을 참조 삼아 출중한 관찰력으로 상대방을 스캔(Sherlock Scan)해냅니다. 셜록 홈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드라마에서, 셜록이 식당 저편에서 식사하는 한 여인과 남자를 두고, “감성적인 과부에게 돈을 얻고자 노력하는 그의 어부 아들”이라고 단정하는 장면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왓슨에게 셜록이 쏟아내듯 말합니다. 셜록이 포착한 장면과 결론은 이렇습니다. “남자가 입고 있는 스웨터(jumper)는 거의 새 것이다. 따라서 그는 즐겨 입지 않는 옷을 일부러 입고 나왔고, 이는 맞은 편 여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여인이 준 선물이지 않을까?”, “남자가 신은 구두는 닳아 있다. 따라서 그가 경제적으로 곤궁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음식을 적게 시켰으면서도, 접시를 깨끗이 비운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하다. 반면 여인의 음식은 충분히 시켜두었고, 여인은 아직 음식을 다 먹지 않은 상태이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이 자리는 남자가 여인에게 잘 보이고자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라고 봄이 타당하다. 결국 남자는 여인에게 돈을 요청하러 온 것 같다.”, “여인은 목걸이에 결혼반지를 달아두었는데, 이는 그의 돌아간 남편이 착용하던 반지일 것이다. 여인이 손가락에 착용하기에는 남편의 반지는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좋은 반지를 가질 수 있음에도 여전히 가지고 다니는 것은 그가 감성적이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의 뜬금 없는 결론이 논리적인 추리로 둔갑하는 모습은, 경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작가가 왓슨이라는 캐릭터를 셜록 홈즈 옆에 둔 것은, 독자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그러니까 왓슨의 찬탄이 곧 독자의 탄복이 되도록) 배려해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는 우리에게 익숙해 마지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탐정업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종래 구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1695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40조 제4호에서는 신용정보회사등이 아닌 사람은 탐정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고(5호),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일을 업으로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었습니다(4호).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탐정 등 명칭사용 금지조항은 탐정 유사 명칭을 수단으로 이용하여 개인정보 등을 취득함으로써 발생하는 사생활의 비밀 침해를 예방하고, 개별 법률에 따라 허용되는 개인정보 조사업무에 대한 신용질서를 확립하고자 마련되었던 점, 사생활 등 조사업 금지조항은 특정인의 소재·연락처 및 사생활 등 조사의 과정에서 자행되는 불법행위를 막고 개인정보 등의 오용·남용으로부터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평온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던 점을 근거로 하여, 이들 규정은 직업수행 또는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2016헌마473).

이후 위 법이 개정되어 탐정업의 문이 공식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탐정 등 명칭사용 금지조항과 사생활 등 조사업 금지조항에 대해서 적용대상을 신용정보회사등으로 한정하고, 신용정보회사등이 아닌 사람에 대하여는 위 금지조항의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이에 탐정업을 영위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한국판 셜록홈즈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탐정업의 위법과 합법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므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음도 유의해야 합니다. 셜록 홈즈를 꿈꾸고 현대판 명탐정에 기대하는 바가 큼을 잘 알고 있지만, 그동안 탐정업을 금지해왔던 취지 또한 십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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