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0)-전 법무차관 증거인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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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80)-전 법무차관 증거인멸 사건
  • 신종범
  • 승인 2021.06.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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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은 임명되자 마자 택시 기사 폭행 사건에 휘말려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도 못하고 사임하고 말았다. 그는 차관으로 임명되기 전인 지난해 11월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탔다가 자택 앞에서 자신을 깨우는 택시 기사를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단순 폭행사건으로 택시 기사가 처벌을 원치 않아 종결되었던 사건은 그 후 운전 중인 기사를 폭행한 것으로 단순 폭행이 아닌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라 ‘운전자 폭행’으로 처벌했어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당시 택시 안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이 전 차관이 택시 기사에게 욕설을 하고 멱살을 잡는 과정에서 택시 기사가 운행을 한 정황이 엿보인다. 이 전 차관이 특가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전 차관은 증거인멸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전 차관이 택시 기사에게 1,000만원을 주고 합의를 시도하면서 블랙박스 영상 삭제를 요청했고, 택시 기사가 이에 따라 영상을 삭제하였다는 것이다. 모 시민단체는 이러한 의혹에 대하여 이 전 차관을 경찰에 고발했다.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경찰은 이 전 차관을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택시 기사를 증거인멸 혐의로 입건하여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 증거인멸 사건에서는 증거인멸죄와 관련된 쟁점이 잘 나타나 있다.

먼저, 폭행사건의 피해자인 택시 기사에게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피해자가 피해 사건의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범죄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의 표현으로 증거인멸행위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이 없고, 이 사건에서처럼 피해자를 증거인멸죄로 처벌하는 것이 부당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형법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 증거인멸죄가 성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이상 피해자라 하더라도 타인인 범죄자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면 증거인멸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증거인멸죄가 보호하려는 법익이 피해자의 개인적 법익이 아니라 국가의 형사사법기능이라는 국가적 법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될 수 있다.

다음으로, 택시 기사가 본격적으로 수사가 개시되기 전에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하였다면, 이는 형사사건화 되기 이전의 인멸행위이므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지 않는지 문제된다. 이에 대하여 판례는 “증거인멸죄에 있어서 타인의 형사사건이란 인멸행위 시에 아직 수사 절차가 개시되기 전이라도 장차 형사 사건이 될 수 있는 것까지를 포함한다”(대법원 1995. 3. 28. 선고 95도134 판결 등)라고 보고 있으므로 이에 따르면, 증거인멸죄 성립에 수사 개시 여부는 문제되지 않는다.

이 전 차관과 관련하여서는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이 문제된다. 앞에서 본 것처럼 형법은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 증거인멸죄의 성립을 인정하므로 ‘자기사건’의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는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수 없다. 즉, ‘자기사건’에 대하여는 증거인멸죄의 정범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죄의 정범은 성립할 수 없지만,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을 교사하게 되면 어떨까? 이 전 차관이 택시 기사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였다면 이 전 차관을 증거인멸교사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우리 판례는 ‘자기사건’에 대한 증거인멸 교사범의 성립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즉, “범인이 증거은닉을 위하여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 역시 원칙적으로 처벌되지 아니한다” 라고 보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방어권의 남용이라고 불 수 있는 경우에 증거인멸교사범의 성립을 인정하면서 방어권의 남용에 해당하는지는 “증거를 은닉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태양과 내용, 범인과 행위자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형사사법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4. 10. 선고 2013도12079 판결 등)라고 판시하고 있다.

결국, 이 전 차관에게 증거인멸교사죄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위와 같은 판례의 판단 기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판단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수사기관이 어떠한 결과를 내어 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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