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4-애연의 시대, 금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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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24-애연의 시대, 금연의 시대
  • 손호영
  • 승인 2021.06.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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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담배 예찬론은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담배가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직선적으로 담배의 의미를 과장했고, 어떤 시인은 “나는 담배를 통해서 ‘증발’되기도 하고 ‘집중’되기도 한다.”라고 세련되게 포장했으며, 어떤 소설가는 “나는 일하기 원하지 않는다. 단지 담배를 피우고 싶을 뿐이다.”라면서 담배에 의존하는 자신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에 대한 찬양은 유구합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은 “담배가 가래와 습기를 잘 없애고 기(氣)를 내리며, 또 술을 깨게 한다. 지금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심어 활용하는데, 매우 효험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정조는 마음을 정제하고 삼가야 하는 기우제를 행할 때도 술은 금하게 하였지만 담배는 피우게 할 정도였습니다.

담배에 매료된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행할 수준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칠은 언제나 오전 8시 시가를 피우면서 일과를 시작했고, 시가를 입에 문 채 신문을 읽었으며 전투기를 탈 때조차 시가를 피웠다고 합니다. 존 F.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물건의 수입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릴 때조차 자신을 위하여 1,000개의 쿠바산 시가를 주문했다고 합니다.

담배의 깊은 애호 역사는 역설적으로 경계의 높은 정도를 방증합니다. 코넬대학교 교수 리처드 클라인은 “담배는 숭고하다.”라는 제목의 책까지 출간하였는데, 담배의 숭고성을 증명하려는 그의 노력은 거꾸로 담배에 대한 비판이 거셈을 말해줍니다. 조선시대 효종은 보고서에 배인 담배 냄새에 질려 명했다고 합니다. “여러 보고서에서 매번 담배냄새가 배여 있다. 단단히 타이른다... 예전의 냄새 없던 때로 되돌아가라. 이제 단단히 마음가짐을 해 모두 남김없이 깨달아 실천하라.” 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에서 키스신을 찍을 때 담배를 태우는 상대 배우에게 “3시간 전부터 담배 금지령을 내렸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담배의 매력 못지않게 악덕 또한 잘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금연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금연 성공 사례는 널리 공유되고 추켜세워집니다. 여러 사례를 종합해보면, 금연 성공 원칙은 금연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를 도와주는 기관의 도움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자활(自活)의 노력으로 금연에 도달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담배제조사에게 흡연자의 담배 중독에 대한 어떠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담배제조사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논의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호기심에 청소년기부터 흡연을 시작하여 20~30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이들이 폐암, 폐결핵 등으로 고통받았고, 이들 중 일부는 사망하기까지 합니다. 흡연자와 그 유족들은 주식회사 케이티엔지를 상대로 위 회사가 제조·판매한 담배는 결함이 있고, 그 담배를 구매·흡연하게 됨에 따라 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 등을 겪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습니다.

제조물책임 법리가 적용되는 제조물로서 담배에 결함이 있는지에 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대법원 2011다22092 판결).

설계상의 결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담배 연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니코틴과 타르의 양에 따라 담배의 맛이 달라지고 담배소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나 향을 가진 담배를 선택하여 흡연하는 점, 담배소비자는 안정감 등 니코틴의 약리효과를 의도하여 흡연을 하는데 니코틴을 제거하면 이러한 효과를 얻을 수 없는 점”을 근거로 하여, 대법원은,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채용하지 않은 것 자체를 설계상의 결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표시상의 결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흡연이 폐를 포함한 호흡기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담배소비자들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널리 인식되게 되었다고 보이는 점...흡연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대법원은 담배제조자가 법률의 규정에 따라 담뱃갑에 경고문구를 표시하는 외에 추가적인 설명이나 경고 기타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담배제조자가 제조·판매한 담배에 표시상의 결함이 인정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 밖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된 결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대법원은 담배제조자가 제조한 담배와 그 연기 속에 발암물질 등이 존재한다거나, 담배 연기 속에 포함된 니코틴이 의존증을 유발할 수 있고 금연을 저해하여 발암에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만으로 담배제조자가 제조한 담배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전성이 결여되어 있는 등의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숭고하다”는 책을 쓴 리처드 클라인은 책 머리말에서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원래는 담배를 끊고자 하는 절박한 욕구에서 이 글을 썼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애호하면서 멀리하고자 하는 복잡한 딜레마 속에 있는 듯 합니다. 결국 지금의 시기는, 담배의 매력과 악덕이 서로 얽혀진, 애연의 시대와 금연의 시대가 혼화된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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