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의 꼬리를 무는 영어(98)-e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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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의 꼬리를 무는 영어(98)-estate
  • 강정구
  • 승인 2021.06.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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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강정구 영어 연구소 대표
공단기 영어 대표 강사

★ estate

the fourth estate는 "언론계"를 가리킨다. 중세 유럽에는 'Three Estates(세 신분: 성직자, 귀족, 평민)'이 있었는데, 이는 사실상 19세기까지도 지속되었다. 1787년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가 의회 연설에서 기자석을 가리키며 the fourth estate(제4부)로 지칭한 데서 유래되었다. 1828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토머스 매콜리(Thomas B. Macaulay, 1800~1859)는 『에든버러 리뷰(Edinburgh Review)』에 쓴 글에서 "의회의 기자석은 제4부가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를 기원으로 보는 설도 있다. 하지만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이 『영웅숭배론(On Heroes and Hero Worship, 1841)』에서 버크를 '저작권자'로 지목한 걸 믿는 게 좋을 것 같다. 오늘날 언론을 가리켜 '제4부'라 하는 건 입법·사법·행정에 이은 제4부라는 의미가 강하다.
 

real estate는 "부동산"을 뜻한다. 왜 real이 붙었을까? unreal한 estate(토지, 재산)가 있기라도 하단 말일까? 여기서 real은 법률 용어로 "사람이 아닌 사물에 관련된"이란 뜻이며 사실상 "부동산의"를 의미한다. 부동산에 대응되는 "동산(動産)"은 personal estate라고 한다. real estate는 1666년부터 사용된 용어로 기원은 영국이지만 미국에서 더 많이 사용돼 대부분의 영국인조차 미국 영어로 오해하고 있다.

미국에는 estate sale이란 게 있다. garage sale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귀중품 등이 많이 나오는 세일이다. garage sale은 이사를 가거나 집에 물건이 많아져 좀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나 용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심심풀이 삼아 하는 것인 반면, estate sale은 집 주인이 사망했을 때 유품을 정리하기 위한 대대적인 세일이다.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하는 세일도 estate sale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유품 정리인 경우가 많다. estate sale에는 liquidator(청산인)라는 전문 직업인이 수수료를 받고 주관하기도 하는데, liquidator는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자신이 주관하는 세일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하는 파워가 있다.

"What we call real estate-the solid ground to build a house on─is the broad foundation on which nearly all the guilt of this world rests(우리가 부동산이라 부르는 것, 즉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은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죄악이 생겨나는 광범위한 근거다)." 미국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말이다.

호손의 대표작으로는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 1850)』가 있다. 그는 뉴잉글랜드 초월주의자들이 시도한 주거 공동체인 브룩 농장(Brook Farm)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스턴 초월주의자인 조지 리플리(George Repley)의 꿈이었던 브룩 농장은 1841년 매사추세츠의 웨스트록스베리(West Roxbury)에 실험적인 공동체로 세워졌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라는 이상과 공동체 사회의 요구 사이에 생기는 갈등 문제로 무너졌으며, 1847년의 화재로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호손은 나중에 브룩 농장을 강하게 비판하는 등 공동체 실험에 대한 환멸감을 나타냈다.

"How can a man be said to have a country when he has not right of a square inch of it(땅 한 조각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어떻게 그의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말이다.

필라델피아에서 스코틀랜드 복음주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 중학교를 마치지도 못하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노동을 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해 신문기자 겸 경제학자가 되었다. 그는 철도 회사들이 농민들을 총으로 위협해 본래 살던 곳에서 쫓아내는 현실을 보면서 철도 회사를 비롯한 재벌들을 '노상강도'라고 비난했으며, 철도 회사에 투자하는 중산층의 탐욕도 꾸짖었다. 그는 그런 뜨거운 심정으로 2년간 책을 썼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이다.

그는 이 책을 쓴 후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쏟았지만 책을 내줄 출판사를 찾을 길이 없었다. 노동자 출신으로 학력도 이름도 없는 사람의 책을 누가 출판해주겠는가. 그는 결국 자비 출판으로 자신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데 이 책이 미국과 영국에서 수십만 부나 팔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토지가 빈곤 문제의 핵심이라는 그의 통찰력이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임금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산업은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움직인다. 만약 노동이 없으면, 원료도 없으며 생산은 존재할 수 없다. 이건 자명한 사실인데 종종 망각된다." 그는 부의 근본이 토지이므로 토지세를 통해서 정부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주기적으로 경제 불황이 닥치는 이유는 토지사유제로 인해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지대를 징수하여 최우선적인 세원으로 삼아야 한다."

조지는 더 나아가 시민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공동 소유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적 토지 소유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개인 소유 형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지대만 세금으로 거둬 국가 재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다른 형태의 세금은 폐지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부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조지는 자신의 비전을 실천하고 널리 퍼뜨리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강연하는 데 정열을 쏟았으며, 뉴욕 시장 선거에도 계속 출마했다. 1886년 출마 때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할 정도로 그의 주장에 공감한 이들이 많았다.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연구했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는 『진보와 빈곤』을 "금세기 출간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격찬했다. 또 『진보와 빈곤』은 톨스토이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세기 내내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진영이 노동과 자본에만 집착하느라 그의 메시지는 외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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