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의 꼬리를 무는 영어(97)-establis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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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의 꼬리를 무는 영어(97)-establishment
  • 강정구
  • 승인 2021.05.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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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강정구 영어 연구소 대표
공단기 영어 대표 강사

★ establishment

The Establishment는 "체제, 권력 기구, 기득권층, 주류파"란 뜻이다. 미국 작가 채닝 폴록(Channing Pollock, 1880~1946)은 "Home is the most popular, and will be the most enduring of all earthly establishments(가정은 이 세상의 모든 제도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며, 그래서 가장 오래 지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용법의 경우처럼 establishment는 일반적인 제도의 의미로는 쓰였지만, 특별히 기득권 세력을 강조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변화는 영국에서 1935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해에 영국 작가 포드 매덕스 포드(Ford Madox Ford, 1873~1979)는 영국 문단의 엘리트 세력을 가리켜 "the establishment"라고 했다. 이어 1953년 영국 역사가 A. J. P. 테일러(A J. P. Taylor, 1906~1990)는 "the Establishment"라고 표기하는 등 '지배계급'이라는 의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 1955년 9월 영국 저널리스트 헨리 페얼리(Henry Fairlie)가 『스펙테이터(Spectator)』라는 잡지에 쓴 글에서 오늘날의 의미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the Establishment"라는 말을 썼다.

미국에서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the Establishment"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쓴 사람은 펜실베이니아대(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사회학과 교수 에드워드 딕비 발첼(Edward Digby Baltzell, 1915~1996)이었다. 이미 오래전 랠프 왈도 에머슨이 썼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렇다 할 영향을 미친 것 같지는 않다.

발첼은 1964년에 출간한 『프로테스탄트 체제: 미국의 귀족주의와 카스트 제도(Protestant Establishment: Aristocracy and Caste in America)』란 책에서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와스프)란 말을 최초로 사용하기도 했다. 발첼은 이미 1958년에 출간한 『필라델피아 신사: 미국 상류계급의 형성(Philadelphia Gentlemen: The Making of a National Upper Class)』이라는 책에서는 사립 기숙학교가 미국형 귀족주의 사회의 요람이 되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보수주의자로서 사립 기숙학교들을 긍정 평가한 발첼은 "the Establishment"라는 말도 긍정적 의미로 쓴 것이었다.

미국 사회의 주류인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를 지목하는 WASP는 좁은 의미로는 잉글랜드계만 가리키지만, 잉글랜드계와 민족적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는 게르만족의 분파인 독일, 프랑스, 북유럽 국가와 영국 왕가와 혈연관계가 있는 네덜란드, 웨일즈 등의 혈통도 WASP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다.

WASP만 입장할 수 있는 컨트리클럽이 1882년에 최초로 생겨난 뒤 1929년에는 4500개에 이르렀으며, 그로튼 스쿨(1884)을 비롯하여 상류 WASP 자제들의 진학 예비 학교들이 생겨나고, WASP 상류 인사들의 인명록인 『명사 인명록(Social Register)』이 창간되고, '메이플라워호 자손협회'(1894)를 비롯한 WASP의 유서 깊은 계보를 자랑하는 클럽들이 잇달아 창설됐다. 이는 프런티어의 종언이 중하류층의 욕구 불만 탈출구 노릇을 했던 서부로의 이주를 중지시킴으로써 그들의 불만이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WASP의 자구책이었다.

미국에서 'Establishment' 논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난 건 1968년이었다. 이해 대선은 공화당 내부의 분열 양상이 보인 선거였는데, 이 분열에 아이비리그가 큰 몫을 했다는 게 흥미롭다. 당시 공화당에서 세력을 얻고 있던 반(反)기득권적 'outsider' conservatism(비주류 보수주의)는 당의 재벌 가문 위주의 eastern establishment(동부 기득권층)와 언론사·재단·싱크탱크·아이비리그 대학 위주의 eastern liberal establishment(동부 자유주의 기득권층)를 공격했다. 이들은 특히 아이비리그 대학에 반감이 깊었다.

대선 유세 중인 1972년 10월 리처드 닉슨은 여론에 대한 불신을 강력 표현했다. 그는 국익을 추구해야 하는 대통령직의 어려움을 말하면서 "평균적인 미국인은 집안의 어린아이와 같다"고까지 주장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는 훨씬 거칠게 말했겠지만, 그거야 알 도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2008년 12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가 관리하는 닉슨도서관이 200시간 분량의 육성 테이프와 9만 쪽에 이르는 서류를 공개하면서 닉슨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거친 말투가 그대로 드러났다.

"Never forget: The press is the enemy. The Establishment is the enemy. The professors are the enemy(명심하시오. 언론은 적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적입니다. 교수들도 적입니다)." 닉슨이 1972년 12월 1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1923~)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렉산더 헤이그 부보좌관에게 한 말이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화가 나서 한 말인데, 닉슨은 특히 "교수들은 적"이라고 거듭 강조한 뒤 "칠판에 이 말을 100번 옮겨 적은 뒤 결코 잊지 말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We've always been fit and capable ······ and willing to play three out of five, but powers that be─the tennis establishment─didn't want us to do that(우리는 늘 준비가 돼 있었고 능력이 있었기에 5판3승제를 하고 싶었지만, 테니스계 기득권층이 못하게 한 것입니다)." 40대 후반까지도 정상급 선수 생활을 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전설적인 테니스 여왕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atilova, 1956~)가 1976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녀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It didn't matter to them whether I was number one or number twenty. They wanted tennis to be second in my life(내가 1등을 하건 20등을 하건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테니스가 내 인생에서 부차적인 것이 되길 원했지요)."

나브라틸로바는 2세트만 먼저 이기면 되는 여자 테니스를 남자 테니스처럼 5판3승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은 그녀가 미국에 오래 머무르면서 경기를 하면 '미국화'된다며 미국에서 경기를 하지 말 것을 요구했기에, 결국 그녀는 조국과 테니스 사이에서 테니스를 택해 1975년 9월 미국에 망명했으며 1981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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