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정체성 투표’와 ‘저항 투표’ 속에서 ‘유권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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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정체성 투표’와 ‘저항 투표’ 속에서 ‘유권자정당’
  • 신희섭
  • 승인 2021.05.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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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한국 유권자들은 두 가지 기준으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첫째 이념이고, 둘째 지역이다. 과거보다는 좀 변화했다고 하지만 지역주의를 선택기준으로 삼고 있는 유권자들이 많다.

이념과 지역주의에 기초한 투표는 ‘정체성 투표’로 볼 수 있다. 어떤 정책이 나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인지, 어느 정당이 나에게 더 나은지보다는 나와 정체성이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정당에 표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투표는 유권자에게 두 가지 이점을 제공한다. 첫째, 만족감을 준다. ‘이익(interest)’이 아니라 ‘만족감’을 준다. 간단하게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조금 더 나가서는 시민으로서 투표를 통해 공동체에 기여했다는 만족감을 준다. 둘째, 선거를 단순화시킨다. 여러 후보와 여러 정당을 특별히 관찰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게 해준다.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화만큼 좋은 것이 있나!

그런데 한국의 선거 중에서는 이러한 정체성의 확인작업보다 불만이 지배하여 투표할 때가 있다. 일명 ‘저항 투표(protest voting)’다. 유권자가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이다. 이런 투표 행위는 유대감과 만족감을 기준으로 투표하기보다 이익에 기초하는 것이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가 대표적인 저항 투표라고 할 수 있다.

지나간 선거를 다시 끄집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에서 저항 투표는 꽤 여러 차례 등장한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 당’이 비례대표에서 2위를 차지한 것. 2017년 대선에서 제3의 후보였던 ‘국민의 당’ 안철수 후보가 21.4%를 받고 ‘바른 정당’의 유승민 후보가 6.8%를 받아 두 후보의 득표율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24%보다 높았던 사례. 2004년 총선에서 탄핵 역풍으로 신생정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민이 단점 정부를 만들어준 사안 등등.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한국 유권자들이 ‘정체성 투표’를 한다면, 이 저항 투표는 어떻게 설명이 되는가? 정체성이 한두 가지 정책에 의해 바뀌기 어렵다면 두 가지 현상에는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현상에는 모순이 별로 없다. 이념과 지역주의에 유대감이 강한 유권자들은 정체성 투표를 한다. 어찌 되었든 자신이 지지한 정당과 고통의 길을 함께 한다. 반면에 한국의 40%가 넘는 무당파층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 즉 이들이 저항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 층위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이 어떤 기준으로 투표하는지에 따라 선거마다 당선 여부가 갈린다. 이들은 선거 직전에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가장 유사한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이나 호감이 가는 정책을 내세우는 정당과 후보를 선택한다. 하지만 정부나 집권당이 맘에 안 들면 저항 투표를 통해서 유권자의 매운맛을 보여준다.

이런 한국 정치의 특성에 더해 신생민주주의 국가로서 낮은 수준의 정당발전이 겹치면서 한국정당의 특성이 만들어진다. 한국은 유권자대비 진성당원의 비율이 2009년 기준 0.9%다. 반면에 정당 지지자의 비율은 2008년 기준으로 37.8%다. 즉 정당에 당비를 납부하면서 정당에 열정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매우 적지만, 정당에 대해 지속적으로 표를 던지는 이들이 적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 정당 지지자 비율이 40% 미만이라는 점은 한국 유권자 중 30%와 30%가 각각 보수와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주장에서의 정당 지지 비율보다 낮은 것이다. 즉 60%에 해당하는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를 지지하는 이들 중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과 이들보다는 덜 지지하는 이들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의 이러한 낮은 정당 선호도는 선거에서 지지 정당이 바뀌고 정당별 의석수의 변동을 가져오는 ‘선거 유동성’을 높인다. 한국의 높은 ‘선거 유동성’은 유권자와 정당 간의 거리가 제법 멀기 때문이다. 즉 많은 유권자가 정당에 대해 당비를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선거에서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지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활동은 매우 어렵다. 거대 정당이 충성파만을 보고 정체성공유만을 외치면서 외길을 가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유권자를 모으기 위해 지지자들과 등을 돌리기도 어렵다. ‘외연확장과 내포’의 문제를 가진다. 즉 어떤 방법이 안정적인 정당정치를 만들지 답을 찾기 어렵다.

얼마전 ‘유권자정당’에 대한 시론적 주장을 보았다. 정당의 기능에서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와의 거리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또한, 당이 특정 파벌이나 당의 열성분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일반 유권자와 유리되는 현상을 막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조직이 중요하고 정당정치의 연속성이 필요한 정당이 과연 이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도 싶다. 어찌 되었든 저항 투표를 통해 불만을 표출하는 유권자가 이렇게 많은 한국 정치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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