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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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가정은 무엇인가
  • 최용성
  • 승인 2021.05.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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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사람은 태어나 부모 품 안에서 꽤 긴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온다. 사춘기는 신체적으로 제2차 성징이 나타나고 감정적으로는 질풍노도의 변덕을 보이는 시기이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갑자기 부모에게 엄청난 반항심을 보이거나 정반대로 부모를 회피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물론 호르몬 변화가 그 원인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리 말하고 끝내는 것은 자연과학자나 의사의 몫이다.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 의미까지 물어야 한다. 모든 인간은 결국 부모에게서 독립한 개체로 성장하여야 한다. 아기를 품 안에 두고 있을 때 기쁨은 너무 크지만, 그것이 영원히 지속하여야 한다면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이다. 부모가 온전히 모든 사랑을 쏟는 것은 그 끝이 있어서 가능하다. 그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마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스스로 잘 성장해 부모 손길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독립하게 되고 때에 따라서는 부모를 부양하기도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그리고 성장의 결과를 보면서 부모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 자체로 자식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는 셈이다. 그러니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은혜도 모르는 자식”이라는 말은 이상하다. 자식이 낳아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한 적도 없고, 부모가 양육한 방식이 자식에게 최선의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가 느낀 기쁨과 보람은 오히려 누가 준 것인가.

사춘기는 자식이 부모한테서 떨어지려는, 다시 말해 독립하려고 하는 첫 시도를 하는 시기이다. 그러니 그동안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였던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갑자기 잔소리가 되고, 억압으로 느껴지게 된다. 다만 실제 독립할 힘이 아직 없으니 사사건건 불만족스럽고 반항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건강한 모습이다. 한 개인이 독립하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부모의 영향력을 완전히 끊을 정도로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결정의 주체가 내가 되어야 하고, 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진다는 뜻이다. 사춘기는 바로 그 첫 과정이므로 이 시기의 독립충동을 발산하여 잘 마무리하면 건강하게 성인이 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타인의 시선을 유별나게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사춘기 청소년 스스로 검열을 하여 충동을 억누르기도 하고, 부모가 권위로 누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부모가 불화로 자주 다투는 것을 보면서 아이 스스로 자신이 불화의 원인이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때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억압된 충동은 겉보기에는 무사히 지나가 버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은 채 마음 깊숙한 어둠의 영역에 남아 호시탐탐 복수의 칼날을 간다. 그것은 부모와의 불화를 일으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엉뚱하게도 그 칼날의 궁극적 희생자는 아무 죄도 없는 배우자, 나아가 자녀들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건강한 가정의 모습을 화목한 부부와 자녀들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생각하고는 한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이 바람직한 인간관을 형성하리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오히려 배우자 관계가 늘 좋기는 어렵다. 불같은 열정은 빨리 식고, 그 뒤를 채울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바람 앞의 등불이다. 오히려 부부 사이가 원만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일 아닌가?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상대방을 배려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훈련도 받지 않은 채 신속히 혼인에 이르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말이다(한 이혼 담당 변호사가 “혼인이 그만큼 빨리 진행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만약 혼인이 이혼만큼이나 오래 끌었으면 우리 일거리도 없었을 테니 말이야”라고 했다는 법 유머가 정곡을 찌르고 있다. 최종고 엮음, 법과 유모어, 교육과학사, 1991, 190면). 사람은 서로 의지하며 사는 존재이지만,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침범당하면 견디기 어려워한다. 부부 사이는 바로 그 영역을 침범하기 쉬워서 오히려 충돌이 잦고, 이때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불화가 지속하여 자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자녀 돌봄 영역에서 반복되는 불화는 더 치명적이다. 이때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모가 부담스러워 하여 서로 떠넘기려고 한다고 받아들임으로써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만약 부부 일방 또는 쌍방이 자신의 욕망에 너무 충실하여 불륜에 빠지기라도 하면, 아이는 사랑을 불신하며 성장할 개연성이 커진다. 이럴 때도 과연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이 모범적인 가정이라는 생각을 고수해야 할까?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타인의 시선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강해 이혼을 인생의 실패라고 보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 많은 사람은 진실을 알고 있다. 불행한 혼인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고 아이를 건강하게 양육하는 데에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부모가 혼인관계를 유지하여야 화목한 가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한부모자녀 가정, 계부모자녀 가정, 양부모자녀 가정, 부모가 없지만 다른 보호자가 있는 가정, 심지어 친인척 관계없는 남남들이 모여 사는 가정이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 돌봄, 신뢰가 깔렸다면 이야말로 진정 화목한 가정이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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