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백신확보전쟁’과 재화를 둘러싼 ‘해석 투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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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백신확보전쟁’과 재화를 둘러싼 ‘해석 투쟁’ 가능성
  • 신희섭
  • 승인 2021.05.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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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전세계적으로 COVID-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은 누적 확진자가 3천 3백만 명을 넘은 지 오래다. 인도도 확진자 2,000만 명을 넘었다. 인도는 누적 사망자만 22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5월 5일 기준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총 1억 5,240만 9,365명이고 사망자는 319만 6,681명이나 된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스페인 독감과 비교했을 때, 현재가 100년이나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수치들이다. 더 많은 통제장치, 더 많은 역학 정보, 더 발전된 의료체계를 갖추었음에도 아직도 바이러스는 인류에게 싸우기 힘든 상대다.

심각한 상황은 백신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백신을 공급받기 위한 싸움이 전쟁 수준이다. 문제는 전 세계에서 의료적으로 검증된 백신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백신 개발에 드는 막대한 돈과 기술력을 갖춘 거대 제약 기업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화이자와 모더나와 존슨앤 존슨. 주로 미국회사들이다. 물론 영국 옥스퍼드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백신도 있다. 그러다 보니 예방률이 높은 미국산 백신을 구하려는 국가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나마 부유한 국가들의 경쟁이다. 높은 비용을 주더라도 생산물량이 한정된 미국산 백신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 전쟁에 버금간다.

이 전선에 중국이 뛰어들었다. 미국산 백신 확보전에 뛰어들기 어려운 국가들에 백신을 뿌리는 것이다. 중국은 자국산 백신인 시노팜 백신을 45개 국가에 긴급사용 승인을 받아 공급하고 있다. 또한, 시노백 백신은 32개 국가에 공급하고 있다. 코로나 상황이 급박해지자 국제보건기구(WHO)에서는 최근 중국 시노팜 백신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 보고서를 기초로 WHO에서 긴급승인을 받게 되면, 중국은 비서구권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WHO를 통과하게 된다. 중국 백신의 예방률이 78.1% 정도 되기 때문에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백신 전쟁에 러시아도 일찌감치 참전 중이다. 러시아는 61개 국가에 자국 백신을 공급 중이다. 러시아산 백신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최근 영국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예방효과가 91.6%로 나오기도 했다. 유럽의약품청은 지난 4월 백신 부족 상황을 고려해 대안으로 스푸트니크 V에 대한 승인절차에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위탁생산을 하고 있고, 한국 정부도 부족한 백신의 대응책으로 수입을 고려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선제행동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도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념 연설에서 미국이 전 세계 ‘백신의 무기고’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미국은 6천만 회분의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자국민을 위해 백신을 통제해오던 미국이 의료차원의 관점에서 외교 차원의 관점으로 시각을 전환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전방위에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한발 늦은 미국의 참전은 단순한 백신 전쟁의 우위 확보 경쟁만은 아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국가들에 누가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것인지의 ‘인도적 경쟁’이자 우호세력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 경쟁’이다. 또한, 더 길게는 국제사회에서의 정당성과 매력에 대한 ‘연성 권력’에 관한 경쟁이다. 마치 냉전기 제 3세계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지원 경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직접적인 생사 문제를 다룬다는 점이 차이가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백신이 WHO와 유럽의약품청에서 승인을 얻게 되면 더 많은 국가들에 보급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과 서방국가들에는 큰 타격을 가할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 이기주의 속에서 저발전 국가들은 뒷전에 두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과 러시아 백신이 코백스 퍼실리티(약칭 코백스)를 통해 ‘대량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게다가 ‘공평하게’ 공급되면 그 여파는 무척 커질 것이다.

백신 전쟁의 핵심이 국가의 단순히 연성 권력의 확대 여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백신이라는 재화의 성격을 둘러싼 ‘사회적 해석 투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백신을 민간기업에서 만들고 이를 시장경쟁을 통해서 분배한다.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면 ‘사용재(private goods)’다. 이 재화는 소유자가 사용할 때 다른 이는 사용할 수 없으며(경합성), 재화에 비용을 부담하지 않은 행위자는 사용에서 배제(배제성)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국영으로 생산하고, 이것을 원가 수준에서 대량으로 공급하게 된다면 이 재화는 ‘공유재(common goods)’가 될 수 있다. 즉 누군가 백신을 접종할 때 다른 사람은 같이 접종할 수 없지만, 개발 비용을 제공하지 않은 국가들도 사용에서 배제되지 않는(비배제성) 것이다. 백신의 공급이 넘쳐나서 어떤 사람이 사용해도 다른 사람의 사용을 막을 수 없을 정도(비경합성)가 되면 ‘공공재(public goods)’가 되겠지만, 백신이 이런 재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재화 성격을 둘러싸고 두 가지 투쟁이 예상된다. 첫째,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사회주의’ 체제가 가진 장점을 선전하면서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자유주의 vs. 사회주의’ 대립의 오랜 망령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둘째, 자유주의와 자유의 범위에 관한 싸움이 제기될 것이다. 백신을 개발하고 그 수익을 얻기 위한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논리가 긴급한 인류적 재앙의 논리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 실제 코백스에 가입한 165개 국가들은 서방국가들의 자유주의에 기초한 백신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게다가 서방에서도 긴급상황에서 백신 특허를 일시 면제해주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창의성과 그에 대한 보상을 강조한다.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서방국가들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소유권 논리를 제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의 양보는 또 다른 양보를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적 도덕성과 인류애를 쉽게 거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철학 문제를 담고 있는 이 백신 전쟁은 좀 더 오랫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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