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9-신통력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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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9-신통력의 함정
  • 손호영
  • 승인 2021.05.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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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1 아이가 어머니를 여읩니다. 어머니를 모심에 정성스러웠던 효자였지만 사정이 넉넉지 않아 묫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죄스러운 마음과 서러운 마음이 얽혀 울먹이는 아이에게 주민들이 한 마디 건넵니다. 산 속에 용한 점쟁이가 있다. 한번 찾아가 보아라. 묘수를 알려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아이를 만난 점쟁이는 시냇가 옆을 묫자리로 점지해줍니다. 땅을 파도 계속해서 물이 나오고, 흙이 굳지 않는 곳. “그곳은 묫자리로 쓰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지 않습니까.” 조심스레 묻는 아이에게 점쟁이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곳이 명당 중의 명당이다.” 믿자니 상식에 맞지 않고, 상식을 따르자니 용한 점쟁이의 말이 걸립니다. 아이는 결국 시냇가 옆에서 흙을 부지런히 파내는데, 솟아오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주민들은 점쟁이를 욕하고 탓하며 아이를 안타까워합니다.

“점쟁이가 효자에게 모친의 묫자리를 엉뚱한 곳으로 알려줬다더구먼.” “용하다더니 다 거짓부렁이였어. 아이만 불쌍하지.” 떠들썩한 소문은 궁궐 담장을 넘어 숙종(肅宗)에게까지 다다릅니다. 숙종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아이에게 쌀 삼백 석을 내리고, 양지바른 곳에 모친의 묫자리를 주선해줍니다. 그리고 선비 차림으로 갈아입고 불문곡직 점쟁이에게 따지러 찾아갑니다.

“자네가 그 아이에게 시냇가 옆을 묫자리로 쓰라고 하였는가?” “그렇소만. 당신은 누구길래 다짜고짜 행패요?” “파는 족족 물이 스미는 땅이 어떻게 명당인가! 자네의 요사스러운 허명(虛名)이 세상을 홀려 그 해악이 크다는 것을 아는가?” 그러자 점쟁이가 가당치도 않다며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그곳이 얼마나 명당이냐면, 아이가 어머니를 묻기도 전에 쌀 삼백 석을 내려받고 나라에서 양지바른 곳에 묫자리를 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명당이란 말이오!”

점쟁이의 바로 그 말대로 되었기에 숙종은 매우 놀랍니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예의를 갖추며 다시 묻습니다. “아니, 이렇게 신묘하신 분이 왜 이렇게 누추한 곳에 계시는 겁니까?” 점쟁이는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합니다. “이곳은 말이오, 보기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임금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자리요.” “그러면 임금은 언제 찾아온답니까?” “가만 있어 보자, 날을 받아 놨는데.” 잠시 날을 꼽아보던 점쟁이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고 바들바들 떨며 숙종에게 절을 합니다. 숙종은 그를 크게 치하하며 자신의 묫자리를 묻습니다. 그곳이 서오릉의 명릉(明陵)이라 합니다.

#2 어떤 이가 승려에게 그의 아내가 앓고 있는 정신분열병에 대해 상의를 합니다. 그러자 그곳에 마침 있던 이가 ‘기도와 기치료’로 낫게 해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 아들에 대해 상의를 했더니, 대뜸 기도비를 요구하면서 “아들에게 액운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는 딸 이야기를 했더니, “너의 작은 딸도 귀신이 씌어서 힘들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은 이미 상당한 돈, 약 1억 원을 건넨 다음입니다.

기도와 기치료를 해주겠다던 피고인은 알고 보니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다가 마사지 업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을 뿐,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도 아니었고 그동안 기치료를 해 본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가 액운을 쫓아내는 행위라고 주장한 행위는 ‘실외 골프연습장에서 피해자의 아들 이름과 생년월일을 골프공에 적고 골프채로 그 공을 치는 행위’ 같은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자격 및 경력,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위 돈들을 지급받은 구체적인 경위,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예고한 불행이나 약속한 내용,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하여 실제로 한 행위의 특이성, 장기간 피고인이 지급받은 위 돈들의 총 액수 및 그 실제 용도, 치료불가능한 처의 병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처해 있었던 불안한 심리상태 및 대출을 받아야만 했던 피해자의 재산상태 등’을 고려해서, 피고인의 행위는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16도12460).

신통한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합니다. 사람의 이해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그 매력의 정도는 더해집니다. 숙종의 명릉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이의 효성, 숙종의 미복잠행과 배려 덕분이기도 하나, 점쟁이의 신통함에 대한 놀라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통함에 지나치게 몰입되면 함정에 빠지기에 십상입니다. 판례 사안의 피해자가 어떤 마음에서 그에게 돈을 건넨 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듯, 그의 ‘불안한 심리상태’는 진정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기댈 곳을 찾아 어떻게든 극복하려 했던 절절한 피해자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대법원이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불행을 고지하거나 길흉화복에 관한 어떠한 결과를 약속하고 기도비 등의 명목으로 대가를 교부받은 경우에 전통적인 관습 또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꾸준히 설시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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