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시포스의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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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시포스의 형벌
  • 백태승
  • 승인 2021.04.3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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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승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백태승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불러온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평소 교활하고 얕은꾀로 위기와 어려움을 돌파하였지만 끝내 제우스 왕의 분노를 사 저승에 가게 되자 여전히 속임수와 약은 행실로 버티지만 결국 나중에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끊임없이 반복하여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졌다. 그가 힘겹게 무거운 바위를 정상까지 올리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내려갔기에 시시포스에 처한 형벌은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비유되곤 한다. 우리나라 국회의 법안 처리가 딱 그 꼴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6대 국회 당시 2507건의 제출된 법안 가운데 30.2%인 756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된 것을 시작으로 17대 때는 42.2 %, 18대 때는 45.3 %, 19대 때는 55%, 직전인 20대 국회는 65%에 달해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법안이 대를 거듭할수록 점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19대에 이어 20대 국회도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덤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의원 입법이 폭증하면서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법안은 지속해서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번에 폐기되었던 법안 중에는 여야가 강조하는 다수의 민생법안, 상속인 자격을 제한하는 민법을 비롯하여 성범죄 처벌수위를 높이는 형사법 개정안 등 국민적 관심의 높은 법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1999년과 2009년 법무부가 추진한 민법 중 재산법 개정안은 두 번씩이나 국회에서 좌초되었다. 더구나 2009년에 구성된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는 약 155명의 학자와 실무가가 참가하여 5년간의 작업 끝에 정부 안으로 확정되었는데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되었다.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일본 민법 개정작업은 채권법의 현대화 기치로 2009년 출발하여 회기와 무관하게 심의하여 민법 개정안이 현재 시행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부끄럽다.

왜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회기계속을 규정한 헌법 제51조에 있다. 우리나라는 제5대 국회까지는 회기불계속의 원칙이었으나 제6대 국회부터 회기계속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제51조 단서에 숨은 함정이 있다.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면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제출된 법안이 무더기로 폐기될 위험에 있다. 겉으로는 회기계속의 원칙이 채택되고 있지만, 국회가 불성실하게 운영되거나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가 파행이라도 되면 법안 심의를 질질 끌다가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더구나 심의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국회의원들이 경쟁적으로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의 의정활동평가에서 법안 발의 건수를 중요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역대 가장 많은 2만4141 건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그중 89.5%가 의원 안이었다. 우려되는 것은 이른바 시세에 영합하는 ‘포퓰리즘’(populism) 법안이 제대로 입법영향 평가도 없이 초등학생 방학숙제 하듯이 쏟아지며 일부는 다분히 위헌적인 법안까지 제출된다. 그러다 보니 법안심사 속도도 매우 느리다.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법안의 평균 처리 기간은 577.2일이 소요되었다. 20대 국회에서 도입된 이른바 ‘안건신속처리제’(Fast Track)도 ‘fast’라 하기가 무색할 만큼 평균 302.7일이나 걸렸다.

이처럼 매회기 반복되는 국회의 법안폐기를 개선하기 위하여는 우선 헌법 제51조의 단서를 삭제하여 본연의 회기계속의 원칙을 되찾거나 국회의 의결에 따라 중요한 민생법안과 사법안은 다음 회기에서도 계속 심의할 수 있게 하는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 일본이나 영국은 회기불계속의 원칙임에도 그렇다. 또한, 국회의원 의정활동평가에서 법안 제출 건수가 아니라 정밀한 법안제출을 기초로 국회통과 건수를 그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제출되는 법안은 초기부터 정밀하게 다듬어야 하고 입법영향 평가도 제대로 받되 그 처리는 신속하게 하여야 한다. 제대로 된 나라의 국회의원은 수험생처럼 한눈팔 틈도 없이 눈코 뜰새 없이 열심히 일한다.

지난 4월 25일은 법의 날이었다. 별로 주목받지는 못하였지만. 법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날이다. 국회는 법은 제대로 만들어야 하고 그 집행은 누구에게나 엄정하여야 하고 사법부는 한편에 치우침이 없는 공정한 결과를 도모하여야 한다.

백태승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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