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8-반려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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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8-반려견의 의미
  • 손호영
  • 승인 2021.04.3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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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1 마을 잔치를 다녀온 주인은 몹시 취해, 개울가 풀밭 위에서 잠시 잠을 청합니다. 마침 풀밭 저 끝에서 번지는 불은 보지 못한 채.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스레 여긴 개는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주인이 처한 다급한 상황에, 개는 주인을 깨우러 달려듭니다. 짖기도 하고, 물어 흔들어보기도 하지만, 주인은 도무지 깨어날 기색이 없습니다. 인정 없는 불이 주인을 침범하려 하자, 개는 근처 개울가로 뛰어듭니다. 물을 몸에 적시고, 불 붙은 풀밭 위를 뒹굽니다. 거듭 반복한 덕분에 불은 스러졌지만, 개 또한 지쳐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주인이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상황을 알겠습니다. 울며 개를 묻은 뒤,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팡이를 꽂아둡니다. 그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라자, 사람들은 그 마을을 오수(獒樹, 개 나무)라 부릅니다.

고려 시대 문인 최자(崔滋)가 작성한 <보한집>에 나오는 오수개 설화입니다. 개가 주인을 따르는 충성스러움과 총명함을 적은 내용입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잘 알려진 이 설화는 사실 전국적으로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합니다. 오수개와 같은 진화구주형(불을 꺼 주인을 구하는 유형)이 있는가하면, 투호구주형(맹수와 싸워 주인을 구하는 유형), 변신구주형(둔갑하여 동물이나 귀신을 물리쳐 주인을 구하는 유형) 등 개의 의로움을 치켜세우는 설화는 다채롭습니다.

#2 웰시코기 코코는 소유욕이 심합니다. 밀린 빨래를 하러 바구니를 놓자, 코코가 찜을 합니다. 바구니를 집으려다가는 코코에게 물리기 십상이어서, 이제는 빨래를 할래야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코코가 휴지통을 찜하는 바람에 집 정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코코를 어떻게 교육하면 될지 고민한 끝에 전문가를 찾습니다. 전문가는 그동안 코코를 복종시키려고만 한 교육이 잘못 되었다며, 그래서 코코가 반항을 하는 것이라며 재교육을 권유합니다. 코코가 쓰레기통에 집착을 보이면 쓰레기통을 여럿 두어 주의를 분산시키고, 여러 개의 공을 한꺼번에 던져 어리둥절하게 하는 한편, 지시를 잘 따르면 칭찬하고 아껴주는 식입니다. 꾸준한 재교육이 계속되자, 코코의 집착은 사라집니다.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에 빈번하게 나오는 반려견 행동교정 사례입니다. 예전 설화에서는 의로운 개가 주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는 내용이 주되었다면, 이제 기르는 강아지는 말 그대로 ‘반려(짝이 되는 동무)’이기에, 가족과 같은 반려견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내용들이 공유됩니다. 주종관계에서 가족관계로의 변화, 반려견의 위상 변화라고 할 것입니다.

현재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638만 가구로 추정됩니다. 그 중에서 반려견이 602만 마리라 하니 양(量)적인 면에서도 적지 않은데, 이제 반려견 호텔, 반려견 미용은 물론 반려견 전용 택시 서비스까지 나온다고 하니, 위상 변화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가히 반려견 전성시대라 할 만합니다.

시대가 변화하니 동물보호법의 해석도 달라질 필요가 생겼습니다. 구 동물보호법(제1465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8조 제1항 제1호, 제46조 제1항은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때, 개를 묶은 상태에서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주둥이에 대어 감전시키는 도살 방법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할까요?

1심과 2심은 ‘잔인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위 조항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이란, 적어도 목을 매달아 동물을 죽일 경우 그 과정에서 동물이 겪게 되는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와 유사하거나 더 많은 고통 등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고 인정되는 방법으로 엄격히 한정하여 해석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3심은 달랐습니다. “특정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은 해당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자체 및 그 방법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므로 이 사건 조항에서 금지되는 잔인한 방법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이를 고려하여야 한다. 위와 같은 인식은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사회통념에 따라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해당 도살방법의 허용이 동물의 생명존중 등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 동물별 특성 및 그에 따라 해당 도살방법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고통의 정도와 지속시간, 대상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개 도살에 사용한 쇠꼬챙이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 개가 감전 후 기절하거나 죽는 데 소요되는 시간, 도축 장소 환경 등 전기를 이용한 도살방법의 구체적인 행태, 그로 인해 개에게 나타날 체내·외 증상 등을 심리하여, 그 심리결과와 이 사건 도살방법을 허용하는 것이 동물의 생명존중 등 국민 정서에 미칠 영향, 사회통념상 개에 대한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의 행위를 이 사건 조항에서 금지하는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로 볼 수 있는지를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7도16732 판결).

3심이 지적한 특정 동물에 대한 그 시대, 사회의 인식 변화는 실상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3심은 그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법의 해석에 반영하였습니다. 법률가가 단지 법에만 구애되서는 되지 않고, 사회의 변화에도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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